주역은 점치는 책일까, 점술서이자 사상서라고 적혀 있다

주역은 점치는 책일까, 점술서이자 사상서라고 적혀 있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면서 생각을 담은 책이다. 사전은 이 책을 「중국 고대의 점술서이자 사상서인 유교 경전」으로 풀이한다. 점을 보려고 이 말을 검색한 사람도, 한문 고전이 궁금해 검색한 사람도 엉뚱한 데로 온 것은 아니다.

자주 돌아오는 물음 둘을 먼저 답한다. 역경과 주역은 같은 책의 다른 이름이고, 64괘는 여섯 줄로 된 기호 예순네 벌을 가리킨다. 하나 더 보태면 괘를 어떻게 뽑는지는 이 책을 풀이한 사전 항목이 다루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그 셋을 차례로 본다. 왜 길흉부터 찾게 되는지, 이 책이 실제로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읽을 때 어디서 한 번 멈춰야 하는지 순서로 간다.

목차읽는 데 약 6분

주역을 찾는 사람이 먼저 알고 싶은 것은 길흉이다

검색창에 이 말을 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대개 구체적인 상황이 하나 있다. 결정을 앞뒀거나, 결정을 이미 내려 놓고 확인받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괘 하나를 들었는데 그게 좋은 소리인지 모르겠는 상태다. 그럴 때 알고 싶은 것은 책의 역사가 아니다. 좋은가 나쁜가, 그 하나다.

다행히 이 책은 그 물음을 피하지 않는다. 괘마다 붙은 말은 상징을 그리는 부분과 길흉을 판단하는 부분으로 나뉘고, 뒤쪽을 가리켜 단이라 부른다. 단이라는 글자 자체가 길흉을 단정하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주역이 길흉을 말해 주느냐고 물으면, 말해 준다고 답할 수 있다.

이 책을 서양 심리학자가 읽은 기록도 남아 있다. 영어 번역본에 융이 서문을 붙였다(Wilhelm·Baynes 역, 『The I Ching or Book of Chang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Bollingen series 19). 다만 서지로 선 것은 서문이 있다는 사실까지다. 그 안에서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원문을 보지 못해 옮기지 않는다.

주역 64괘의 여섯 줄을 떠올리게 하는 가로 켜가 진 바위 단면
가로로 켜가 진 바위 단면, 색이 다른 층이 여러 겹 포개져 있다

주역은 경과 전, 두 덩이로 묶인 책이다

사전은 이 책을 본문인 경과 해설인 전으로 나눈다. 경은 64괘에 붙은 괘사와 효사이고, 상경에 서른 괘, 하경에 서른네 괘가 들어간다. 전은 열 편으로 묶여 십익이라 불리는데 단전 상하, 상전 상하, 계사전 상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이다.

괘는 음양 부호를 겹쳐 만든 상징 기호다. 여덟 개짜리를 소성괘, 예순네 개짜리를 대성괘라고도 한다. 부호 하나하나는 효라 부르고 음효와 양효 둘뿐인데, 음효는 육으로 양효는 구로 적는다. 괘사가 맡는 것은 괘 하나의 상황과 그 길흉이고, 효사가 맡는 것은 움직이는 상황 속 각 효의 상태와 그 길흉이다.

역이라는 글자의 뜻도 하나가 아니다. 정현은 이 글자를 변역과 불역과 이간, 세 가지로 풀었다고 사전은 전한다. 바뀐다는 뜻과 바뀌지 않는다는 뜻을 한 글자가 함께 품는다. 해석의 폭이 처음부터 넓었다는 말이다.

경과 전, 한 책 안의 두 층
경은 괘와 효에 직접 붙은 짧은 말이다. 상경 서른 괘와 하경 서른네 괘, 그리고 각 효에 붙은 말이 전부 여기 들어간다.
전은 그 짧은 말을 풀어 놓은 열 편의 해설이다. 단전과 상전과 계사전처럼 이름이 따로 있고, 묶어서 십익이라 부른다.

복희와 문왕과 공자, 저자 전승은 셋이었다가 넷이 되었다

누가 지었느냐는 물음에 사전은 두 가지 전승을 나란히 싣는다. 삼성설은 복희가 음양효와 팔괘와 64괘를 만들고, 문왕이 괘사와 효사를 지으며 64괘의 순서를 정하고, 공자가 십익을 지었다고 본다. 사성설은 여기에 주공을 보탠다. 효사 안에 문왕이 세상을 떠난 뒤의 일이 적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사전은 이 전승을 그대로 두지 않고 한 줄을 덧붙인다. 십익과 공자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라는 문장이다. 삼성설과 사성설도 엄밀히 구분해 쓰이지는 않았다고 적는다. 땅속에서 나온 마왕퇴 백서본과 상해박물관 초간본은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교 경전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로 소개된다.

널리 도는 말은 「공자가 주역을 풀었다」이고, 사전이 적은 것은 그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장이다. 널리 도는 말을 조용히 버리는 대신 그 차이를 드러내 두면, 해설을 읽을 때 무엇을 원문으로 믿을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지은 사람이 전승으로만 남은 책은 이 하나가 아니다. 토정비결 보는 법을 정리하면서도 같은 문제를 만났는데, 그 책 역시 이지함의 저작으로 전해지지만 후대에 엮였다는 설명이 함께 붙는다.

64괘는 여덟 개를 둘씩 겹쳐 얻은 수다

예순넷이라는 수는 세어 붙인 값이 아니다. 여덟을 두 번 겹쳐 나온 값이다. 효 셋으로 된 단괘가 여덟 개 있고, 그것을 둘씩 포개면 효 여섯짜리 중괘가 된다. 그래서 한 괘를 그리면 가로줄이 여섯 개 쌓인 모양이 된다.

길흉이 정해지는 방식도 사전은 설명해 둔다. 단괘가 어떤 차례로 결합했는지, 그리고 여섯 효가 서로 어떤 관계에 놓였는지로 정해지며, 그 법칙의 바탕은 음양 원리다. 예로 곤괘가 위에 있고 건괘가 아래에 있는 태괘는 길하고 형통한 괘로, 그 반대인 비괘는 막히고 이롭지 못한 괘로 규정된다.

사전 항목의 서술은 이 줄에서 끝난다. 뒤에 오는 한 문단은 내가 보탠 읽기다. 위아래를 뒤집었을 뿐인 두 괘가 정반대로 판정된다는 것은, 이 체계가 재는 대상이 사물 자체보다 사물이 놓인 위아래라는 뜻이 된다. 같은 재료라도 포갠 차례가 바뀌면 답이 달라진다. 태어난 때를 여덟 글자로 옮겨 읽는 사주 보는 법도 글자 하나하나보다 그 글자가 어느 기둥에 앉았는지를 먼저 보는 식으로 출발한다.

주역을 만나는 길목은 대개 넷이다

첫째는 책으로 만나는 경우다. 한문 원문만 실린 판본을 펴면 괘 그림과 짧은 말이 번갈아 나오고, 번역서는 거기에 옮긴 말을 붙이며, 해설서와 강의는 십익이나 후대 주석을 끌어다 설명을 더한다. 어느 것을 집든 눈에 들어오는 분량은 경보다 해설이 많다.

둘째는 점으로 만나는 경우다. 앱이 괘 하나를 띄워 주기도 하고, 사람이 동전이나 산가지를 써서 뽑아 주기도 하며, 생년월일을 넣으라고 하는 곳도 있다. 뽑는 방법이 여럿이라는 사실은 흔히 듣는데, 그 가운데 무엇이 본래의 방법인지까지는 이 책을 풀이한 사전 항목이 짚지 않는다.

셋째는 결과를 받아 든 경우다. 괘 이름 하나만 들었을 수도 있고, 괘사까지 들었을 수도 있고, 효사 한 줄까지 들었을 수도 있고, 길이나 흉이라는 글자 하나만 들었을 수도 있다. 들은 것이 짧을수록 해석의 폭은 오히려 넓어지니, 한 글자만 들고 무겁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넷째는 말로 만나는 경우다. 괘 이름이 속담처럼 쓰이기도 하고, 사주 풀이에 섞여 나오기도 하고, 이름을 지을 때 끌려 나오기도 하고, 서양 카드점과 한 묶음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책의 내용보다 책의 권위만 옮겨 오는 경우가 많으니, 들은 말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 물어도 좋다.

주역을 두고 자주 돌아오는 물음들

주역 64괘는 모두 몇 줄로 되어 있나

한 괘가 여섯 효이니 예순네 괘를 다 그리면 가로줄은 삼백여든네 개가 된다. 다만 사전 항목은 효의 총수를 직접 밝히지 않고 한 괘가 여섯 효라는 것까지만 적는다. 그러니 이 숫자는 사전이 적은 값이 아니다. 곱해서 얻은 값으로 보는 것이 맞다.

주역과 역경은 같은 책인가

같은 책이다. 두 이름을 쓰게 된 내력은 이렇다. 본래 점술서였던 이 책이 유교 경전으로 들어가면서 한대부터 역경이라 불렸다고 사전은 적는다. 약칭으로 그냥 역이라고도 한다.

주역점은 어떻게 치는 것인가

이 물음에는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이 책을 풀이한 사전 항목에는 서법이나 산가지를 쓰는 절차가 실려 있지 않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뽑은 뒤에 읽을 말이다. 뽑는 손놀림까지는 그 풀이가 미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괘효를 끌어다 쓰는 자리는 따로 적혀 있다. 한 해 길흉을 묻던 신수 보기의 여섯 방법 가운데 육효법이 육효를 뽑아 『주역』의 괘효에 따라 판단하는 쪽이다.

주역과 사주는 같은 것인가

묻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사주는 태어난 때를 바꿀 수 없는 입력으로 놓고 읽고, 이 책은 지금 뽑은 괘를 입력으로 놓고 읽는다. 하나는 고정된 값에서 출발하고 하나는 그때그때 새로 얻는 값에서 출발하니, 같은 물음을 두 번 묻는 일로 겹치지는 않는다. 사주와 토정비결을 나눠 보는 기준도 이것과 비슷하게 서 있다. 사전이 명리학의 일종으로 적는 자미두수도 태어난 때를 입력으로 삼는 쪽이라, 뽑은 괘에서 출발하는 이 책과는 들머리가 다르다.

괘사와 효사 중 무엇을 읽어야 하나

둘은 보는 높이가 다르다. 괘사는 괘 전체의 상황과 길흉을 말하고, 효사는 그 상황이 움직이는 동안 여섯 줄 하나하나가 어떤 상태인지를 말한다. 전체 분위기가 궁금하면 괘사를, 지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가 궁금하면 효사를 본다.

주역의 음효와 양효가 둘뿐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흑백 바닥 타일
검은 타일과 흰 타일이 번갈아 깔린 바닥, 두 가지 색만 쓰였다
이 글이 사전에서 확인한 것

  • 이 책은 점술서이면서 사상서로 풀이된다. 둘 중 하나만 고를 필요가 없다.
  • 괘사와 효사는 길흉을 말한다. 길흉을 묻는 것이 이 책을 잘못 쓰는 일은 아니다.
  • 해설인 전은 열 편이고, 공자와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 괘를 뽑는 절차는 사전 항목이 다루지 않는다. 뽑는 법을 들었다면 출처를 따로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축을 한 번 더 적는다. 경은 짧고 전은 길다. 그런데 둘이 한 이름으로 묶여 돌아다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괘에 붙은 본래의 말이고 어디부터 뒷사람의 풀이인지가 읽는 사람에게 표시되지 않는다. 여기에 「공자가 지었다」는 전승까지 얹히면 해설이 원문의 무게를 빌려 쓰게 된다. 이 말을 들을 때 한 번 멈출 대목이 거기다.

그래서 괘 하나를 들었을 때 물을 것은 「좋은 괘인가」보다 「지금 들은 이 문장이 경에 있는 말인가, 전에 있는 말인가, 풀어 주는 사람이 보탠 말인가」다. 셋 가운데 어디서 왔는지만 구별되면 같은 괘를 들어도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진다.

그리고 괘가 나쁘게 나왔을 때 기댈 데는 이 체계 자체에 있다. 이 체계는 바뀐다는 뜻을 이름에 걸고 출발했고, 효사가 말하는 것도 고정된 결과보다 움직이는 상황 속의 한 지점이다. 위아래를 바꾸면 태괘가 비괘가 되고 비괘가 태괘가 되는 그림이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한 번 뽑은 괘가 한 해를 봉인하지는 않는다.

덧붙여 권할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어디선가 본 괘 이름이 있다면, 그 괘의 괘사 한 줄을 직접 찾아 읽는다. 길흉 글자 하나만 전해 들었을 때와 괘사 한 줄을 직접 읽었을 때의 느낌이 꽤 다를 것이다. 그 차이를 한 번 겪고 나면, 다음에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때 무게를 스스로 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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