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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좋은 꿈도 흉몽도 한 이름으로 묶여 왔다

꿈 하나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이 말을 찾았다면 먼저 알아 둘 것이 있다. 예지몽은 좋은 꿈과 흉몽을 함께 담는 이름이다. 반가운 일을 미리 보여 준 꿈에도 붙고, 사고를 알려 준 꿈에도 붙는다. 많이 묻는 세 장면만 앞세워 답하면 이렇다. 같은 꿈이 여러 밤 되풀이됐다면, 되풀이 자체를 판정 근거로 적은 전거는 이번에 보지 못했다. 돌아가신 분이 나와 무언가를 일러 줬다면 그쪽은 사전이 이름을 달리 적은 장면이다. 꿈이 몹시 생생했다면 그 또렷함에는 또 다른 이름이 붙는다.

그러면 이 이름은 누가 먼저 적었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꿈」 항목을 펼쳐 이름 목록을 훑으면, 거기 실린 말들이 우리 입에 익은 것과 다르다. 그 차이가 이 글이 가려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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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이라는 이름, 사전이 고른 이름과 달랐다

그 항목은 꿈을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 생시처럼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체험을 하는 정신현상」으로 정의한다. 서대석 서울대 교수가 1995년에 쓰고 2022년 11월에 손본 서술이니, 옛 문헌이 아닌 현대의 정리로 읽어야 한다.

항목이 실제로 쓰는 꿈 이름은 이렇다. 깬 뒤에도 꿈속 체험이 떠오르는 회상몽, 위기를 알려 주고 벗어날 방법을 지시하는 현시몽, 잉태와 신분을 미리 비추는 태몽, 서로 만나는 꿈을 같은 밤에 꾸는 양인동몽, 그리고 백일몽. 좋은 꿈을 이르는 화서지몽, 헛된 내용에 붙는 개꿈, 길몽과 흉몽, 꿈이 보인 조짐을 가리키는 몽조도 함께 있다.

예지몽, 예지, 현몽. 셋 다 항목 본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말을 쓰는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널리 통하는 이름도 하나의 쓰임이고, 사전이 고른 이름과 층이 다르다. 다만 「내 꿈이 예지몽인가」를 사전에서 확인하려 들면 답할 항목이 비어 있다.

예지몽 해석에서 또렷한 기억을 생각하게 하는 서리 앉은 마른 풀
마른 풀 줄기에 앉은 서리, 겉면에만 흰 테가 생겼다

미리 알려 준다는 꿈에 사전이 쓴 이름은 현시몽이었다

항목은 현시몽을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알려주고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지시하는」 꿈으로 적는다. 앞일을 비춘다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벗어날 길까지 지시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다만 항목이 이 이름을 쓰는 자리는 고전소설에 삽입된 꿈을 가를 때다. 현실의 꿈을 분류한 이름이 아니라 작품 속 꿈의 유형으로 적혀 있으니, 내 꿈에 그대로 갈아 끼울 이름은 아니고 옛 이야기가 그런 꿈을 어떻게 세웠는지를 보여 주는 이름이다. 설화 속 꿈 이야기에는 여러 몽조와 그 응험, 곧 조짐이 들어맞았는지도 든다고 적었다.

이름이 하나 더 있다. 꿈을 해석하는 일은 해몽이라 하고, 꿈을 근거로 앞일을 점치는 일은 몽점이라 부른다고 항목은 적는다. 푸는 일과 점치는 일에 각각 다른 이름을 준 것이다. 꿈 내용은 인체·인사·자연물·가옥·기물·동물·식물·기타 여덟 묶음으로 나누어 풀었다.

해석하는 태도는 둘로 정리돼 있다. 꿈의 내용을 상징으로 읽어 판단하는 태도와, 꿈을 현실과 거꾸로 풀어 흉한 내용을 길하다고 보는 태도다. 뒤의 것이 눈에 걸린다. 무서운 꿈을 좋은 조짐으로 뒤집어 읽는 방식이 누군가의 위로용 변칙이 아니었다. 사전이 전통의 해석 태도로 나란히 적어 둔 두 갈래의 한쪽이다.

줄을 여기서 끊는다. 위의 이름과 두 태도는 사전 항목에서 옮긴 것이고, 이어지는 읽기는 내가 보탠 것이다. 예지몽이라 부르는 꿈은 사전의 이름으로 바꿔 놓으면 대개 현시몽과 몽조 사이에 걸쳐 있다. 그런데 그 둘은 꿈이 지닌 성질이 아니다. 뒤에 일이 생기고 되돌아볼 때 비로소 붙는다. 응험이라는 낱말이 그 순서를 보여 준다.

예지몽인지 가늠할 때 보는 장면들

그래서 「예지몽이냐」를 바로 묻는 대신 장면을 나눠 보는 것이 빠르다. 어느 묶음인지 가려 놓으면 어느 이름에 드는지가 함께 보인다.

되풀이와 기억이 남은 밤. 같은 꿈이 여러 밤 이어졌다, 짧은 장면 하나만 남았다, 꿈에서 들은 말이 깬 뒤에도 남았다, 잠들기 전 걱정한 일이 꿈에 그대로 나왔다. 이 넷은 사전의 이름으로 치면 회상몽에 든다. 항목은 회상몽을 「보통 꿈이라고 할 때」 쓰는 말, 곧 깬 뒤에 기억되는 꿈 전체를 이르는 말로 적는다. 넷만 회상몽이라는 뜻이 아니라 넷 모두 그 안에 든다는 뜻이다. 되풀이와 또렷함을 앞일의 증거로 세운 서술은 항목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나온 꿈. 돌아가신 분의 당부, 길을 막고 선 모르는 사람, 식구가 같은 밤에 꾼 같은 꿈. 첫째는 현시몽의 조건과 맞고, 셋째가 서로 만나는 꿈을 같은 밤에 꾼 경우라면 양인동몽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는다. 돌아가신 분이 나온 꿈을 전통이 어떻게 받았는지는 죽은 사람 꿈 풀이에서 다뤘고, 아이를 기다리는 집에서 꾸는 꿈은 임신 태몽 이야기가 본자리다.

또렷했던 밤. 색까지 또렷했다, 깨자마자 몸이 떨렸다, 꿈속에서 꿈인 줄 알았다, 깼다가 다시 잠들며 이어 꿨다. 이 넷은 꿈 내용보다 잠의 상태가 만든 자리다. 눌린 느낌까지 있었다면 가위눌림 꿈 해몽을 먼저 보기를 권한다.

받은 것과 잃은 것. 꿈에서 좋은 것을 받았다, 무언가를 잃었다, 날짜나 숫자를 봤다. 이 셋은 길몽과 흉몽 판정이 바로 걸리고, 사전이 적은 두 번째 태도가 쓰이는 묶음이다. 잃은 꿈이 곧 손실을 뜻하지는 않았다.

예지몽을 두고 자주 되묻는 물음들

꿈이 실제로 맞았다는 기록이 사전에 있나

설화를 다루는 대목에 응험이라는 낱말이 있고, 조짐이 들어맞은 이야기가 든다고 적혀 있다. 다만 설화 속 사건이다. 실제로 몇 번 들어맞았는지를 센 값은 항목에 없다. 들어맞은 비율을 들고 다니는 설명을 만나면 그 숫자의 출처를 되물을 만하다.

태몽도 예지몽에 드나

사전은 태몽을 잉태와 아이의 신분을 미리 비추는 꿈으로 적고, 예지몽이라는 상위 이름은 거기 쓰이지 않는다. 태몽은 그 자체로 독립된 이름이다. 미리 비춘다는 성질이 겹치니 한 묶음으로 쓰는 것이고, 항목에서는 나란히 선 두 이름이다.

같은 꿈을 두 사람이 같이 꿨다면

그 장면에는 양인동몽이라는 이름이 있다. 항목은 이산해의 탄생담을 그 예로 든다.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적중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다만 「우리만 이상한가」 싶을 때 옛 이름이 하나 서 있다.

흉하게 읽히는 꿈을 꿨을 때 옛사람은 무엇을 했나

사전이 적은 두 번째 태도가 곧 그 답이다. 뒤집어 읽기가 전통 해석의 한편에 서 있었다. 겁을 덜려고 생긴 요령은 아니었다. 다만 항목은 미신적 해몽에 일정한 이론적 근거가 없다고도 적는다. 뒤집어 읽기를 전통의 한 태도로 알아 두되, 그 읽기에 결정을 걸지는 않는 것이 안전하다.

예지몽 해석에서 보이는 것이 휘어 보이는 일을 생각하게 하는 유리구슬
유리구슬 너머로 바닥의 격자무늬가 휘어 보인다

예지몽이 맞았다는 느낌은 왜 그렇게 또렷한가

현대 연구를 한 줄 당겨 온다. Morewedge & Norton, 「When dreaming is believ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6권 2호, 2009. 이 연구는 사람들이 꿈에 숨은 뜻이 있다고 여기며, 그중에서도 자기가 이미 믿고 있던 쪽과 맞아떨어지는 꿈을 더 의미 있게 읽는다는 것을 보였다. 그렇게 고른 해석이 친구를 보는 눈이나 비행기를 타는 결정 같은 생활 판단에까지 미친다는 결과도 실렸다.

이 결과를 응험이라는 옛 낱말 옆에 세워 보면 구조가 겹친다. 꿈은 밤에 꾸고, 맞았다는 판정은 낮에 붙는다. 이름이 먼저 와서 꿈을 규정하는 듯하지만 순서는 거꾸로다. 일이 생긴 뒤에 그 꿈을 불러내 이름을 입힌다. 그러니 깬 직후에 예지몽 여부를 확정하려 애쓸 이유가 적다.

이름과 판정을 떼어 놓고 보면

· 예지몽은 길흉을 묻는 이름이 아니다. 좋은 꿈과 흉한 꿈이 같은 이름을 쓴다.

· 사전의 꿈 항목이 쓴 이름은 현시몽·몽조·회상몽·양인동몽이고, 꿈으로 점치는 일은 몽점이다.

· 현시몽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벗어날 방법까지 지시하는 꿈이다.

그래서 권할 것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로 하루를 지내는 것이다. 꿈을 지우라는 말은 아니고 판정만 미루라는 뜻이다. 그사이에 할 일이 하나 있다. 그 꿈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은 장면과, 잠들기 전에 마음에 걸려 있던 일을 나란히 놓아 보는 것이다. 둘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가 생각보다 흔하다.

그 꿈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오늘 하지 않아도 된다. 며칠 뒤에 돌아봐도 늦지 않을 텐데, 그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 맞았느냐일까, 아니면 그 꿈을 꾸게 한 낮이 어땠느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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