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죽는 꿈 해몽, 그 사람이 걱정돼 깼다면
친구가 죽는 꿈을 꾸고 그 사람 걱정에 깼다면 먼저 알아 둘 것이 있다. 전해오는 해몽은 이 꿈자리를 바뀜 쪽으로 받아 왔고, 그 사람에게 닥칠 일로는 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벗」이라는 말을 풀어 둔 기록에는 죽음이 분명히 들어 있다. 들어 있는 자리가 우리 짐작과 달랐다.
목차
친구 죽는 꿈 해몽, 옛 풀이가 이 꿈을 뒤집어 읽어 온 까닭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로는 꿈에서 누가 죽는 것을 바뀜의 징조로 봤다. 그래서 죽는 꿈을 길한 쪽에 세워 온 줄이 따로 있고, 벗이 거기 선 꿈도 같은 줄에서 읽혀 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벗」 항목은 이 말을 「비슷한 나이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용어」로 세워 둔다(최승범 집필, 1995년). 정의가 세운 것은 사귀는 일 하나다. 그러면서 같은 항목이 죽음을 한 번 데려다 쓴다. 쓴 자리가 예고 칸이 아니라 벗을 가르는 칸이다.
간밤 꿈이 서늘했다면 서늘했던 것은 그 사람의 수명이 아니었다. 오래 쓰여 온 가름의 자가 잠자리까지 들어온 것이다.
벗을 가른 옛 가름은 셋씩 둘이었다
같은 항목은 사귈 때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을 갈라 적는다.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 곧 셋씩 둘로 나눈 가름이다. 불경의 선우와 악우 구분도 같은 방식으로 소개돼 있다. 벗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가려 보던 말이었다.
그 가름의 마지막 칸이 이 꿈과 바로 붙는다. 항목에 실린 문장은 이렇다.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여기서 죽음이 하는 일은 앞날을 알리는 일이 아니다. 누가 참된 벗인지를 가리는 마지막 자리로 서 있다.
다만 범위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이 항목이 다루는 것은 벗이라는 말의 쓰임과 그 가름까지이고, 꿈과 해몽은 그 범위 밖이다. 위 문장을 「사전이 이 꿈을 길몽으로 보증했다」로 읽지는 마시기 바란다.

친구 죽는 꿈, 장면이 놓인 때부터 가린다
아래 열 칸은 전승의 가름이 아니다. 기록이 죽음을 「임하여」라는 말로 받아 둔 데서 가져와 필자가 나눈 것이다. 친구 꿈을 한자리에 모아 둔 글은 따로 있고, 먼저 간 이가 나온 꿈은 결이 달라 그쪽에 두었다.
아직 임하기 전이던 장면이라면. 아프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면 그 사람 사정보다 내가 미뤄 둔 일이 올라온 꿈자리다. 멀쩡한데 곧 죽는다고 내가 알고 있었다면 관계가 어느 선까지 왔는지 혼자 셈해 본 꿈이다.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면 정리가 붙는 칸으로 받아 왔다. 내가 붙잡고 못 가게 했다면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은 마음이 그 사람 모습을 빌려 온 것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봤다면 할 말이 남아 있다는 신호로 잡는다.
이미 지난 뒤였던 장면이라면. 깨자마자 그 일이 사실처럼 느껴졌다면 걸린 것은 그 느낌이고 그 사람은 아니다. 내가 뒤늦게 도착한 꿈이었다면 요즘 놓치고 있다고 느끼는 차례가 하나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담담했다면 마음이 이미 한 고비를 넘긴 길몽 쪽으로 읽는다. 다시 눈을 떠 웃고 있었다면 민간 풀이가 가장 순하게 받아 온 칸이다. 깨고 나서도 꿈인지 한참 헷갈렸다면 해몽보다 요즘 잠이 얕다는 것을 먼저 본다.
친구가 죽는 것을 내가 막으려 한 꿈
말리고 끌어당기고 소리쳐 불렀다면 꿈 안에서 내가 한 일이 또렷하게 남은 꿈이다. 민간 풀이는 이런 꿈을 흉조로 세우지 않고 도리어 그 일에 쓸 힘이 남아 있다는 신호로 받아 왔다. 깨고 기운이 빠져 있다면 그건 밤새 애쓴 몸의 값으로 본다.
얼굴은 친구인데 이름이 안 떠오른 꿈
얼굴만 벗이고 이름이 비어 있었다면 한 사람보다 벗이라는 자리 자체가 나온 꿈으로 둔다. 요즘 사람을 가려 보고 있을 때 이 꼴로 자주 나타난다. 누구였는지 억지로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칸이다.
친구 여럿이 한꺼번에 죽는 꿈
여러 사람이 같이 들어왔다면 한 사람씩 쪼개 읽지 않는다. 옛 가름이 벗을 셋씩 묶어 세듯 내 사람 관계가 통째로 정리되는 중이라는 쪽에 둔다. 자리를 옮기거나 하던 일이 바뀌는 무렵의 꿈자리로 많이 나온다.
친구 죽는 꿈을 마음 쪽에서 보면
현대 심리에서는 꿈이 깨어 있는 동안 가장 마음을 쓴 관계를 그대로 데려온다고 본다. 벗은 가족과 달리 끊어질 수도 있는 관계라, 끊김이 걱정되는 철에 가장 센 그림인 죽음으로 그려지기 쉽다. 학술 한 줄을 끌어온 풀이는 아니다.
그래서 이 꿈에 붙은 낙인은 떼어 둘 만하다. 「친구가 죽는 꿈을 꾸면 그 친구가 위험하다」는 말은 뿌리를 옛 기록에서 찾기 어렵다. 기록이 적어 둔 것은 죽음이 벗을 가려 내는 끝 칸이라는 것이었고, 거기 걸리는 사람은 꿈에 나온 그 사람이 아니라 꿈을 꾼 이쪽이다. 그 말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간밤 일로 겁낼 칸이 하나 줄어든다.
굳이 무엇을 해야 한다면 이것 하나로 족하다. 내일 먹을 것 가운데 하나를 미리 절여 두는 일이다. 간밤 꿈을 어떻게 읽을지 정하는 일은 아니다. 절여 둔 것은 밤새 혼자 익는다. 벗 사이에 들어가는 몫도 옛 글에서는 그런 꼴이었다. 때가 닿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몫이었다.

친구 죽는 꿈 해몽, 여기서 갈리는 셋
꿈에 나온 친구에게 이 꿈을 말해도 될까?
웃고 넘길 사이면 말해도 된다. 다만 「네가 죽는 꿈을 꿨다」로 꺼내면 듣는 이에게 겁만 남는다. 옛 기록이 이 꿈을 바뀜 쪽에 놓아 왔다는 점을 같이 전하면 말의 결이 달라진다.
모르는 사람이 죽는 꿈도 같이 보나?
다르게 본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나왔다면 특정한 관계에 걸린 꿈으로 보지 않는다. 벗이라는 자리가 붙어 있었는지가 그 갈림의 첫 칸이다.
이 꿈을 꾸고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겹치면 어떻게 보나?
겹칠 수는 있지만 꿈이 그 일을 당겨 온 것으로 세지 않는다. 걱정이 깊던 사이라 꿈에 먼저 나왔고 실제 일은 따로 왔다고 보는 편이 기록이 적어 둔 결에 맞다. 자책할 꿈자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