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칠석은 길일이고 빈 것은 솜씨와 글공부였다

칠월칠석은 길일이고 옛사람이 빈 것은 솜씨와 글공부였다

칠월칠석은 음력 칠월 초이렛날이고, 사전 항목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쳐 길일로 여긴 날이라고 적어 둔다. 좋은 날이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해도 된다. 다만 연인의 날이냐고 물으면 답이 조금 달라진다. 이날 빌었다고 전하는 것은 처녀의 바느질 솜씨, 서당 학동의 글공부, 집안 어른의 장수, 그리고 그해 농사다. 비가 오면 어떤가 하는 물음에도 답이 있다. 칠석에 내리는 비는 반가워서 흘리는 눈물로, 이튿날 아침 비는 헤어지며 흘리는 눈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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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칠석에 무엇을 빌었는지부터 확인하고 간다

사전 항목은 이날 세시풍속을 여러 묶음으로 나란히 적어 둔다. 처녀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편 쟁반을 놓아 솜씨를 축원했고, 이튿날 재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여겨 좋은 징조로 읽었다. 서당 학동들은 별을 보며 시를 짓고 글공부가 늘기를 빌었다. 수명신으로 알려진 북두칠성에게 장수를 빌며 무당을 불러 칠성맞이 굿을 하는 집도 있었다. 농사로는 밭제를 지내고, 햇벼가 익으면 사당에 올리는 칠석차례를 지내며, 우물을 치우고 우물고사를 올렸다. 집집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 무병장수와 평안을 빌었다.

그래서 오늘 이 날짜를 어디에 둘지는 요즘 내 하루가 무엇에 걸리는지로 정하면 된다. 손으로 익히는 일을 배우는 중이라면 걸교, 시험이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이라면 학동, 집안 어른 건강이 마음에 걸린다면 칠성맞이, 텃밭이나 농사를 돌보는 중이라면 밭제다. 아이 글공부가 걱정인 사람, 올해 혼인을 앞둔 사람, 혼자 지내는 사람, 그날 비를 맞은 사람, 맑은 밤하늘을 본 사람, 아무것도 못 챙긴 사람까지 전부 앉을 데가 있다. 『동국세시기』가 옛 풍속이라 적어 둔 쇄의상, 곧 옷을 햇볕에 내어 말리는 일도 이날 풍속에 들어 있다. 좋은 날을 왜 그 날짜로 정했는지는 손 없는 날의 유래를 다룬 글이 따로 짚는다.

견우직녀 이야기를 설화 항목은 다르게 읽는다

줄거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 임금의 손녀인 직녀가 견우라는 목동과 혼인한 뒤 둘 다 맡은 일을 놓자, 임금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떼어 놓고 한 해에 한 번 칠월 초이렛날에만 만나게 했다. 딱한 처지를 본 까막까치들이 머리를 맞대 다리를 놓았고 그것이 오작교다. 칠석이 지나면 그 새들의 머리가 벗는다는 말도 붙었다.

칠월칠석 절식으로 차린 밀전병
집집에서 차린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설화 항목이 이 이야기에서 읽어 내는 것은 애틋함이 아니다. 혼인에 따라오는 책무, 그리고 그 책무를 놓은 값으로 치른 한 해의 기다림이다. 길게 끌린 이별과 짧은 만남을 우주 질서의 상징으로 보고, 직녀가 베 짜기를 멈춘 것을 창조가 멈춘 일로 읽는 설명도 뒤따른다. 한국에 남은 자취로는 408년 덕흥리 고분벽화가 은하수 한편에 소를 끄는 사람, 다른 편에 개를 데린 여인을 그려 두었다. 오작교라는 이름은 「춘향전」의 광한루에도 붙어 있다. 사전 항목이 그 사실을 적어 둔 터라, 두 다리를 같은 것으로 읽지 않게 여기서도 밝혀 둔다.

까막까치가 머리를 맞댔다는 다리 덕에 두 새는 이 하루에 늘 같이 불린다. 꿈에 그 새가 나왔다면 울음이 들린 시각을 먼저 떠올리라는 옛말이 있고, 그 조건은 까치 꿈 해몽에서 다룬다. 온통 검었던 기억만 남았다면 까마귀 꿈 해몽이 맞는 자리다.

칠월칠석을 두고 가장 많이 묻는 세 가지

재를 펴 두고 빌었다는 걸교는 무엇인가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풍속을 걸교라 한다. 사전 항목은 한나라 때 걸교제가 있었고 당나라 때 주변 민족으로 퍼졌다고 적으면서, 민속으로 굳은 걸교제는 찾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모양은 제사가 아니었다. 솜씨를 비는 점복으로만 전해졌다.

칠월칠석 우물고사를 올린 옛 우물 테두리
우물을 치우고 올리던 고사도 이날에 들어 있었다

칠월칠석에 먹는 것이 따로 있었나

집집에서 차린 것으로 사전 항목이 드는 것은 밀전병과 햇과일이다. 무병장수와 평안을 비는 상이었으니 큰 상차림은 아니었다. 그대로 해 보려면 전 한 장과 제철 과일 한 접시면 된다.

혼자 보내는 칠월칠석은 허전한 날인가

사전 항목이 이날 풍속으로 전하는 일은 대개 혼자 하던 것이다. 솜씨를 비는 걸교, 글공부를 비는 축원, 집안 어른의 장수를 비는 칠성맞이에 짝이 필요한 데는 들어 있지 않다. 둘이 아닌 사람에게도 이 하루는 비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칠월칠석은 어디에 두면 되나

미리 정해 둔 날이 멀리 있어도 그 자체로 값을 한다는 설명이 현대 심리와 경제 쪽 연구에도 있다. Loewenstein, 「Anticipation and the Valuation of Delayed Consumption」, 『The Economic Journal』 97권 387호, 1987은 뒤에 올 좋은 일을 미리 맛보는 데서 생기는 효용을 savouring이라 불렀다. 한 해에 하루를 못 박아 두면 그날이 오기 전까지도 받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옛사람이 솜씨와 글공부를 이 하루에 모아 빈 까닭도 그 근처다.

음력 칠월 초이렛날은 올해도 한 번 지나간다. 같은 여름 안에 드는 날이라도 복날처럼 하지와 입추에서 경일을 세어 잡는 날은 음력 날짜가 아니라서 해마다 자리가 달라진다. 그날 아침에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으면, 그것이 이 하루에 빌 거리다.

칠월칠석 한눈에

★ 음력 칠월 초이렛날. 양수 7이 겹쳐 길일로 여겼다.

★ 축원한 것은 솜씨와 글공부, 집안 어른의 수명, 그해 곡식이다.

★ 그날 비는 반가운 눈물, 이튿날 아침 비는 헤어지는 눈물이다.

칠월칠석을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만 알고 지내 왔다면 조금 억울할지도 모른다. 솜씨와 공부와 집안의 무탈을 한 번 소리 내어 바라던 하루가 그 아래에 더 오래 깔려 있었다. 그러니 오늘 누구와 함께인지와 상관없이, 바랄 것 하나만 있으면 이 하루는 그대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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