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는 꿈, 그 차가 선 까닭이 나였는지부터 본다
택시 타는 꿈 해몽은 흉몽 쪽으로 세지 않는다. 전통 해몽에서 탈것은 나를 어딘가로 옮겨 주는 물건이었고, 올라탄 쪽은 대체로 무던하게 보아 왔다. 그런데 이 꿈자리에서 해몽이 달라지는 데는 차의 종류가 아니다. 간밤에 그 차가 선 까닭이 내 손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거기 서 있던 차에 올랐는지다.
도는 풀이는 택시 꿈을 「남이 끌어 주는 운에 실린 꿈」 한 묶음으로 모아 둔다. 아주 틀린 읽기는 아니다. 다만 그렇게 모아 두면 정작 간밤이 보여 준 쪽이 지워진다. 삯을 내고 타던 수레의 기록을 들춰 보면, 이 계열 탈것의 일은 누군가 청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었다.
목차
택시 타는 꿈, 먼저 나눌 한 가지
내가 손을 들어 불러 세운 차에 탔다면 길몽 쪽에 세우는 풀이가 흔하다. 내가 움직여 얻은 차이고, 그 차가 나를 목적한 데까지 옮겨 주었으니 일이 내 손에 잡혀 있다는 해몽이다. 요즘 말로 옮기자면,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닌 일 하나가 곧 답을 들고 돌아올 자리로 본다.
차가 먼저 와서 서 있었고 나는 올라타기만 했다면 결이 조금 달라진다. 이 꿈자리도 흉몽으로 뒤집히지 않는다. 다만 때를 쥔 손이 바깥에 있던 꿈자리로 읽어 왔고, 그래서 이런 간밤에는 함께 탄 사람과 내린 데를 보는 편이 빠르다. 좋은 소식이 남의 손을 거쳐 온다는 읽기도 나란히 선다.
그러니 길흉을 먼저 자르는 것보다, 간밤에 그 차를 세운 쪽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리는 편이 빠르다. 거기까지 잡히면 나머지 해몽은 거의 저절로 따라온다.
삯을 내고 타던 수레는 전화로 불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인력거를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을 태우고 사람이 끌던 수레」로 적는다. 1894년에 열 대가 들어왔고, 1911년 말에 전국 1,217대였다고 같은 항목이 전한다. 집필은 문화인류학자 김광언이 맡았다.
이 항목에서 눈에 걸리는 대목은 숫자가 아니다. 사전은 이용 방법을 적으며 「인력거를 이용할 사람은 오늘날의 콜택시처럼 인력거조합에 전화를 걸어서 불렀으며」라고 썼다. 견줌을 먼저 꺼낸 것은 우리가 아니다. 전거가 이 수레를 설명하면서 지금의 그 차를 스스로 끌어온 것이다. 삯도 같은 항목에 적혀 있다. 「1922년 11월 10리에 80전이던 삯을 60전으로, 하루 전세료도 5원에서 4원으로 낮추었으나」가 그 대목이다. 여기서 전(錢)은 원의 백분의 일을 가리키는 옛 단위다.
곧 삯을 내고 타는 탈것의 내력에는 처음부터 「청함」이 들어 있었다. 길에 서 있는 차를 아무나 집어 타는 물건이 아니라, 부르면 와서 서는 물건이었다는 뜻이다. 이 항목이 적은 것은 교통수단의 내력까지다. 꿈이나 해몽이나 길몽이라는 말은 한 줄도 쓰이지 않았다. 그 짜임을 꿈자리 쪽으로 옮겨 읽은 것은 이 글의 몫이다.

택시 타는 꿈, 간밤에 어느 쪽이었나
우선 내가 세운 쪽이던 꿈자리다. 손을 들어 세웠다, 빈 차 표시를 보고 뛰어갔다, 세웠는데 그냥 지나갔다, 전화로 불러 두었더니 와서 섰다, 한참 서 있다가 겨우 하나 얻었다, 먼저 잡은 사람에게 양보했다. 이 여섯은 모두 내가 먼저 움직인 간밤이다. 지나갔거나 양보했어도 나쁜 간밤으로 보지 않는다. 움직인 일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는 데까지가 그 꿈자리의 내용이고, 그런 간밤은 다시 손들 자리가 남아 있는 꿈으로 읽으면 된다. 버스를 못 탄 간밤은 결이 또 달라서 버스 꿈 해몽 쪽에서 따로 다뤘다.
다음은 차가 먼저 와 있던 꿈자리다. 문이 열린 채 서 있었다, 누가 대신 잡아 주었다, 기사가 말을 걸어 왔다,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가고 있었다, 삯을 치르기 전에 깼다, 내릴 데를 지나쳐서야 알아챘다. 이 여섯은 때를 쥔 손이 바깥에 있던 간밤이다. 이 대목에 겁을 넣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바깥에서 온 것을 곧 손해로 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릴 데를 지나친 간밤만 한 가지를 더 본다. 멈출 때를 내가 말하지 않고 미뤄 둔 일이 요즘 하나 있는지다. 역이 서 주기를 기다리는 결은 기차 꿈 해몽에, 메는 사람이 따로 있던 탈것은 가마 꿈 해몽에 적어 두었다.
택시 안 잡히는 꿈
이 꿈자리를 흉몽으로 적어 둔 대목은 찾기 어렵다. 안 잡히는 동안 내가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면 그 간밤의 주인은 여전히 내 쪽이다. 이 꿈자리에서 볼 것은 얻은 결과보다 구하던 자세다. 요즘 마음으로 옮기면 답이 늦는 일 하나를 아직 놓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그건 마음이 식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택시에서 내리는 꿈
내려야 할 데서 스스로 내렸다면 일이 한 매듭 끝났다고 보는 해몽이 많다. 끝났다는 감각이 허전하게 남을 수도 있는데, 그 허전함은 치를 것을 치르고 난 자리에 흔히 따라온다. 반대로 누가 내리게 해서 내린 간밤이라면 내 뜻과 상관없이 정리되는 일 하나를 본 꿈자리다. 그때는 내린 데가 어디였는지를 함께 보면 된다.
택시를 같이 탄 사람이 있던 꿈
이 꿈자리는 그 사람이 누구였느냐로 해몽이 나뉜다. 아는 사람이었다면 요즘 그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뜻이고,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직 이름이 안 붙은 일 하나가 내 일과 나란히 가고 있다고 읽으면 된다. 둘 다 겁낼 대목은 아니다. 같은 차에 탔다는 것은 적어도 가는 데가 비슷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가 서기를 기다릴 때 마음이 하는 일
이 꿈이 유독 생생하게 남는 데는 까닭이 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언제 올까」와 「어디서 서 줄까」를 쉬지 않고 셈하는데, 깨고 나서도 그 셈의 감각만 남기 때문이다. 심리학 쪽에는 이 셈을 거꾸로 쓰는 방법이 오래 알려져 있다. Gollwitzer, 「Implementation intentions: Strong effects of simple plans」, 『American Psychologist』 54권, 1999, 493~503쪽은 할 일을 마음에 품고만 있을 때보다 「언제, 어디서 하겠다」까지 미리 못박아 둔 쪽이 실제 실행에서 더 나아간다고 정리했다.
간밤에 차가 서 주기를 기다린 사람에게 이 정리가 주는 것은 간단하다. 요즘 마음에 걸린 일 가운데 하나만 골라, 언제 어디서 하겠다고 누구에게든 한 번 일러 두면 된다. 입으로 나간 말은 기다림을 조금 짧게 만든다. 그 일이 곧 풀린다는 보장까지는 아니다. 적어도 서 주기를 기다리던 데서 손을 드는 데로 옮겨 앉게 된다.

간밤을 때 순서로 되짚으면
차가 서기 전 : 내 손이 올라가 있었다면 그 꿈의 주인은 나다. 서 주기만 기다렸다면 때를 쥔 손이 바깥에 있었다.
차가 선 순간 : 내가 세운 차면 알아보고 다닌 일이 답을 들고 오는 해몽, 와 있던 차면 소식이 남의 손을 거쳐 오는 해몽이다.
올라탄 뒤 : 함께 앉은 사람과 내린 데가 남은 절반이다. 지나쳐 내린 간밤이라면 멈출 때를 말하지 않고 둔 일 하나를 떠올려 보면 된다.
택시 타는 꿈 해몽, 자주 묻는 세 가지
삯을 치르기 전에 깼습니다
삯을 치른 데까지가 이 꿈자리의 한 매듭이다. 그 앞에서 꿈자리가 끊겼다면 아직 셈이 남은 일 하나를 본 것으로 읽으면 된다. 금액이 또렷하게 기억난다면 그 숫자보다 요즘 치를 차례가 돌아온 일을 먼저 보는 편이 낫다.
기사에게 길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방향을 쥐고 있던 간밤이라 길몽으로 읽는다. 알려 주는 말이 자꾸 막혔거나 길이 틀렸다면 그것도 흉몽은 아니다. 가는 데는 정했는데 중간 순서가 아직 안 잡힌 일이 있다는 표시로 보고, 그 순서만 한 번 세워 보면 되는 대목이다.
탔는데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말이 없던 꿈자리는 결정을 아직 안 내린 자리로 읽는다. 겁낼 간밤은 아니고, 오히려 지금 급히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 해몽이 많다. 다만 그 차가 가고 있던 방향이 기억난다면 그 방향이 요즘 내 마음이 기울어 있던 쪽일 공산이 크다.
한 줄로 줄이면, 택시 타는 꿈은 탔는지로 읽는 꿈이 아니라 그 차가 선 까닭이 어느 쪽에 있었는지로 읽는 꿈이다. 간밤에 당신의 손은 올라가 있었는가, 아니면 차가 먼저 와서 서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