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죽는 꿈 해몽은 그 말을 아직 쓰고 있다는 데서 시작한다
아빠 죽는 꿈을 꾸고 깼다면 먼저 알아 둘 것이 있다. 옛 해몽은 이 꿈자리를 흉몽으로 세지 않았다. 식구가 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은 오래 사는 편, 집안이 조용해지는 자리에 두고 풀어 왔다.
그런데 길흉 말고 먼저 갈리는 자리가 하나 더 있다. 우리말은 아버지를 두고 쓰는 말을 여러 개 두었고, 그중 몇몇은 뜻풀이에 「돌아가신」이 아예 박혀 있다. 새벽에 「아빠」라고 검색창에 친 사람은 그 말들을 아직 안 쓰는 사람이다.
목차
아빠 죽는 꿈 해몽, 옛 풀이가 이 꿈을 뒤집어 읽어 온 까닭
민간에 전해오는 해몽은 식구가 죽는 꿈을 뒤집는 갈래가 많았다. 꿈에서 한 번 보냈으니 실제로는 더 오래 머문다는 식인데, 전해 내려온 읽기라 여기서도 전해온 대로만 적어 둔다.
대신 사전에 또렷한 것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선친(先親)」을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로 풀어 둔다. 고·선고·선군·선인이 비슷한 말로 묶여 있다. 반면 「가친(家親)」의 풀이에는 그 말이 없다. 남에게 자기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꿈에서 먼저 볼 자리는 길몽이냐 흉몽이냐가 아니다. 그 말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금 내 말이냐다. 「선」 자가 붙은 말을 아직 입에 올린 적이 없다면 간밤 꿈이 당겨 온 것은 없다.

부르는 말은 셋이고 가리키는 말은 서른아홉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아버지」 항목은 이 말을 낳아 준 부모 가운데 남자 어버이를 가리키는 가족호칭으로 세워 둔다. 이문웅(서울대학교 문화인류학)이 1995년에 쓰고 2023년에 손본 항목이다.
거기 적힌 수가 눈에 걸린다. 마주 보고 부르는 말로는 「아버지를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부를 때에 사용하는 직접호칭은 ‘아빠’·’아버지’ 그리고 ‘아버님’ 등 세 가지에 불과하다.」고 적는다. 반면 남에게 가리킬 때 쓰는 말은 서른아홉 가지로 묶어 정리한다. 부친·가친·춘부장이 거기 들어 있고, 선고·선친·선군처럼 「선」 자를 앞세운 말도 여럿이다.
그러니 이 꿈에서 물을 것은 꿈자리가 얼마나 또렷했는지가 아니다. 그 꿈에서 내가 아버지를 부른 적이 있었나다. 부르는 말 셋은 상대가 앞에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요즘 눈으로 옮기면 이 꿈은 아버지가 맡아 온 몫이 옮겨 가는 때에 잦다. 내가 붙인 해석이고 전해온 해몽이 적어 둔 것은 아니다. 죽는 꿈을 통째로 길몽으로 세워 온 까닭은 따로 정리해 둔 자리가 있다.
아빠 죽는 꿈, 그 소식이 어떤 길로 왔는지로 갈린다
부모가 죽는 꿈은 장면이 비슷해 보이는데 갈리는 대목은 셋으로 모인다. 어머니 쪽 꿈은 얼굴부터 보는 갈래라 결이 다르니 아버지 쪽만 세워 본다.
꿈속 아빠가 누워 있었다면 쉬어야 할 몫이 아버지 쪽에 쌓인 것, 서서 말을 했다면 전할 것이 아직 남은 때, 얼굴이 안 보였다면 아버지보다 그 자리가 꿈의 주인이다. 소식이 온 길도 갈린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받아 와야 할 몫이 가까이 온 것, 누가 알려 줬다면 집안일이 나를 거치지 않고 도는 신호, 전화로 들었다면 먼 거리가 걸린 것이다. 꿈에서 내가 한 일도 센다. 울었다면 참아 둔 것이 꿈자리를 타고 올라온 것, 아무 소리도 안 났다면 아직 말이 안 된 걱정, 아빠를 불렀다면 앞서 본 셋 중 하나를 쓴 것이라 결이 가볍다.
이 꿈으로 안 갈리는 것
아버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옛 해몽도 몸을 재는 자리에 이 꿈을 두지 않았다.
이 꿈으로 갈리는 것
그 일이 내 앞에서 벌어졌는지 남의 말을 거쳐 왔는지, 그리고 내 입에서 부르는 말이 나왔는지.
아빠 죽는 꿈에 울다가 깬 꿈
울음이 길었다면 그것은 꿈이 만든 것이 아니라 들고 있던 것이다. 전해오는 해몽에는 울음 섞인 꿈자리를 액을 미리 씻는 자리로 읽는 시각이 있다. 눈물이 거기서 다 나왔다면 낮에 들고 다닐 몫이 줄었다.
아빠가 죽었다는 말만 전해 들은 꿈
장면은 없고 말만 있던 꿈이다. 이 갈래는 소식을 가져온 사람 쪽을 본다.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와 얽힌 일이 먼저 정리될 자리,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직 안 온 소식이 있다고 풀어 온 갈래가 있다.
이미 돌아가신 아빠가 꿈에서 또 죽은 꿈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유독 자주 오는 꿈이다. 전해오는 해몽에서 이 갈래는 겁낼 칸이 아니었다. 같은 꿈자리가 되풀이되어도 그것을 따로 세지 않았다. 어른이 꿈에 나온 자리를 따로 풀어 둔 글과 같은 결이다. 선친이 이미 내 말이 된 쪽이라면, 이 꿈은 그 앞에 있던 시간을 꺼내 오는 자리다.
겁이 났던 자리에 비춰 둘 것이 있다. 사전이 「돌아가신」을 적어 둔 말은 「선」 자가 붙은 쪽이고, 그 말을 쓸 일이 아직 없는 사람은 그 말과 상관이 없다. 오늘 할 일은 작은 것 하나다.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한 일을 물어서 받아 두는 것이다. 그해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만 물으면 한 토막이 따라 나오고, 받아 두면 다음에 꺼낼 것이 하나 늘어난다.
저 백과사전 항목을 쓴 사람은 문화인류학을 한 연구자다. 아버지라는 말이 어떻게 갈려 쓰였는지 적어 두는 데까지가 그 일이었고, 꿈의 길흉은 거기 한 줄도 없다. 애초에 해몽을 그 항목에 두지 않았으니 새벽에 거기를 뒤질 일도 아니다.
아빠 죽는 꿈을 두고 꿈자리 밖에서 오는 물음 셋
아빠 죽는 꿈이 아빠 건강과 상관이 있나?
해몽은 몸을 재지 않는다. 옛 풀이도 이 꿈을 건강의 신호로 세운 적이 없고 오래 사는 편으로 뒤집어 읽었다. 걱정이 며칠째 가시지 않으면 꿈을 덮고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말해 보는 것이 빠르다.
엄마가 죽는 꿈과 아빠가 죽는 꿈은 다르게 보나?
갈리는 축은 같고 보는 칸이 다르다. 두 꿈 다 소식이 온 길에서 갈리는데, 어머니 쪽은 얼굴과 말투가 해몽을 먼저 정하고 아버지 쪽은 맡아 온 몫이 먼저 걸린다.
아빠 죽는 꿈에서 장례까지 봤다면 풀이가 달라지나?
절차가 끝까지 돌아간 꿈은 한 단계 가볍게 읽어 온 갈래가 있다. 다 돌아간 장면은 일이 닫히는 모양이라 매듭으로 세웠고,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면 더 또렷한 길몽 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