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꿈 해몽: 옛 기록은 이 물건을 흉한 자리에 두지 않았다
관 꿈 해몽은 옛 기록에서 뜻밖의 자리에 놓여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꿈」 항목이 옮겨 둔 민간 풀이에서 상여를 보는 꿈은 재물을 얻는 것으로, 문상을 가는 꿈은 아들을 얻는 것으로 적혀 있다. 상장례 쪽 장면을 흉조로 적어 두지 않은 것이다. 널 하나가 나온 간밤의 꿈도 그 줄 위에 있다. 다만 갈리는 데가 있다. 멀찍이 보고만 있었는지, 손을 대어 옮겼는지, 그 안에 들어가 누웠는지에 따라 읽는 결이 제법 달라진다.
목차
옛 기록이 관 꿈을 흉조로 적지 않은 까닭
같은 백과사전 항목은 우리 해몽에 「반대 해석」이라는 방식이 있다고 적는다. 흉한 꿈 내용을 도리어 길하다고 풀이하는 방식이고, 꿈과 현실이 반대된다는 생각에 기댄 것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줄이다. 항목은 이 방식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상 작용과 통하는 데가 있다고 본다. 겁나는 장면을 뒤집어 읽는 옛사람의 버릇이 아무 근거 없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런 읽기는 문헌에만 적힌 것이 아니라 민간에 오래 돌던 속신이었고, 그래서 같은 장면을 두고도 고장마다 결이 조금씩 달랐다.
그러니 옛사람이 이 물건을 대범하게 여겼다고 읽는 것은 조금 어긋난다. 오히려 반대다. 무서우니까 뒤집어 읽는 길을 하나 마련해 둔 것에 가깝다. 이 구분은 해 두는 편이 낫다. 옛말에 기대어 「관 꿈은 길몽이다」로 못을 박으면, 그건 해몽이 아니라 몽점이 된다. 꿈의 상징을 읽는 일과 꿈으로 앞일을 점치는 일은 옛 기록에서도 몽조와 몽점으로 나뉘어 있었고, 여기서 하려는 것은 앞쪽이다.

관 바닥에 별자리를 새겨 넣던 살림
우리말 사전에 칠성판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다. 뜻은 이렇다.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조각. 북두칠성을 본떠서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 놓는다.」 읽고 나면 이 기물의 성격이 달라 보인다. 바닥에 깔려 아무도 다시 보지 않을 널 한 장에, 일곱 개의 구멍을 별자리 모양으로 뚫어 두었다는 것이다.
이런 손질은 급하게 나오지 않는다. 미리 정해 두고, 미리 만들어 두어야 나온다. 북두칠성은 예로부터 수명을 늘려 준다고 여긴 믿음의 대상이기도 했으니, 마지막에 깔리는 널에까지 그 별을 옮겨 놓은 셈이다. 다만 하필 왜 이 별이었는지를 한 갈래로 딱 떨어지게 설명해 주는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별을 새긴 손질이 벽사의 뜻이었는지 수명을 비는 풍속이었는지도 자료마다 갈린다. 없는 설명을 지어 붙이기보다 여기까지만 적어 둔다.
간밤 장면을 아래 세 갈래로 먼저 나눠 보면 뒤의 풀이가 자기 얘기로 붙는다. 답은 여기서 내지 않는다.
· 요 며칠 사이 상가에 다녀왔거나 산소에 다녀온 일이 있었나
· 물건만 나왔나, 아니면 사람이 함께 나왔나
· 나는 손을 댔나, 보고만 있었나
절차가 미리 글로 정해져 있었다는 자취도 남아 있다. 『상례비요』가 그것이다. 신의경이 초본을 쓰고 김장생이 손봐 1583년에 편찬됐고, 책으로 처음 찍힌 것은 1621년이다. 상례의 순서를 조목조목 적어 둔 책이 사백 년 전에 이미 있었다는 얘기다. 닥친 뒤에 허둥대지 말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던 살림이었다는 뜻이고, 옛사람에게 이 기물은 그런 순서 어딘가에 놓인 물건이었지 밤마다 무서워하는 상징이 아니었다.
같은 상장례 갈래라도 무엇이 나왔느냐에 따라 읽는 자리가 다르다. 땅 쪽이 나왔다면 무덤 꿈 해몽 쪽이 가깝고, 절차와 사람이 함께 나왔다면 장례식 꿈 해몽 쪽을 같이 보는 편이 낫다. 꿈에 아는 얼굴이 함께 있었다면 죽은 사람 꿈을 먼저 보는 편이 빠르다. 관은 그 셋과 달리 사람이 치수를 재서 짜 둔 기물 하나다. 그래서 읽는 방향도 땅이나 절차가 아니라 준비 쪽으로 기운다.

밤에 이 널이 나오는 것을 요즘 심리는 이렇게 읽는다
낮에 본 것이 밤에 나오는 결은 특별할 것이 없다. 상가에 다녀왔거나 성묘를 다녀온 날, 그날 눈에 담긴 물건이 잠 속에서 다시 지나가는 일은 흔하다. 그런 경우라면 풀이보다 앞서 확인할 것이 그쪽이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나왔다면, 마치지 못한 일 쪽을 한번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기엔 제법 단단한 연구가 있다. E. J. Masicampo와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2011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1권에 실은 연구인데, 끝내지 못한 목표를 품고 있으면 그 일과 아무 상관없는 읽기 과제를 하는 중에도 생각이 끼어들고, 관련된 낱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오르며, 무관한 문제 풀이 성적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적게 하자 그 끼어듦이 사라졌다.
여기서 정직하게 덧붙일 대목이 있다. 같은 연구는 정서도 함께 쟀는데, 불안·신경과민·자신감·만족감 네 항목에서 계획을 세운 쪽과 그러지 않은 쪽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계획 하나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자꾸 떠오르는 것은 멎었다. 이 글이 「걱정 마시라」로 닫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다. 마음을 통째로 가볍게 만들어 주겠다는 말보다, 끼어드는 생각을 멎게 하는 한 줄이 실제로 손에 잡힌다.
장면별로 관 꿈 해몽이 갈리는 대목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멀찍이 보고만 있었다면 아직 내 손이 닿지 않은 일이다. 지켜보는 자리에 있다는 뜻이니 서둘러 결정할 자리는 아니다. 손을 대어 옮기고 있었다면 이미 내 몫이 된 일이 있다는 쪽이다. 옛사람이 상여를 재물로 읽은 것도 결국 무거운 것을 여럿이 나눠 드는 장면에서 나왔다. 뚜껑을 열어 보았다면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쪽으로 읽는다. 덮어 둔 채 넘어간 일이 하나쯤 떠오른다면 그 일이다. 못을 박고 있었다면 마무리 쪽이다. 끝을 내려고 하는데 아직 못 낸 일이 있다는 결이다. 그 안에 들어가 누웠다면 겁부터 낼 장면이 아니다. 옛 해몽이 뒤집어 읽던 대표적인 자리가 바로 이런 장면이고, 흉몽으로 넘기지 않고 길몽 쪽에 세워 둔 몇 안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즘 말로 옮기면 한 시기를 접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그림에 가깝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면 접으려다 도로 붙든 일이 있다는 쪽이다.
널이 어떤 상태였나
비어 있었다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리라는 뜻이다. 겁내기보다 채울 것을 정할 때라고 읽는 편이 낫다. 누가 들어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면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일 때가 많다. 새것이었다면 시작 쪽으로, 낡아 있었다면 오래 미뤄 둔 일 쪽으로 기운다. 여러 개가 늘어서 있었다면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밀린 것이 여럿이라는 조짐으로 본다.
어디에 있었나
집 안에 있었다면 집안일이나 가족 쪽 사정과 묶어 보는 것이 옛사람의 방식이었다. 마당이나 길에 있었다면 바깥일 쪽이다. 땅에 묻히는 중이었다면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일로 읽는다. 어느 칸이든 하나만 골라 읽지 말고, 위의 세 갈래를 겹쳐 놓았을 때 떠오르는 일이 있으면 그쪽이 맞을 확률이 높다.
관 꿈에서 자주 갈라져 나오는 물음 셋
관에 들어가는 꿈
가장 많이 걸리는 장면이고, 가장 겁나는 장면이다. 옛사람은 이 장면을 뒤집어 읽는 쪽이 많았다. 한 자리를 접고 다음 자리로 옮겨 앉는 그림으로 본 것이다. 다만 이 말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보증은 아니다. 옮겨 앉을 일이 있느냐를 스스로 짚어 보라는 조짐에 가깝다.
빈 관을 보는 꿈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옛 기록이 상여나 문상을 재물·경사 쪽에 둔 것과 같은 결로 읽으면, 채워 넣을 자리가 생겼다는 그림이 된다. 무엇을 넣을지는 꿈이 정해 주지 않는다.
관을 옮기는 꿈
드는 쪽이었는지 따라가는 쪽이었는지가 갈린다. 직접 들고 있었다면 짊어진 몫이 있다는 뜻이고,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면 남의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는 쪽이다. 뒤쪽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몫의 크기를 한 번 재 보는 것이 이 꿈의 쓸모다.

나쁜 결을 숨길 생각은 없다. 이 꿈이 마음을 오래 눌러 두는 경우가 분명히 있고, 특히 꿈에 나온 사람이 실제로 편찮은 분이라면 그렇다. 그럴 때는 꿈을 더 파는 것보다 그분께 전화를 한 통 넣는 쪽이 낫고, 마음이 오래 무겁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방법이다.
명절이나 한식처럼 산소에 다녀오는 철이 지나면 상장례 쪽 물건이 눈에 담기기 쉽고, 그 뒤에 이런 꿈을 꾸었다는 사람도 는다. 그런 철을 막 지났다면, 오늘 할 일은 하나로 충분하다. 미뤄 둔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 언제 어디서 하겠다고 한 줄만 적어 두는 것이다. 연구가 말한 대로 그 한 줄이 마음까지 가볍게 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자꾸 끼어들던 생각은 그 줄에서 멎는다. 간밤에 본 널은 끝을 보여 준 것이 아니라 아직 짜 두지 않은 것을 보여 준 쪽에 가깝다.
관 꿈을 꾸고 나면 남에게 말해도 되나?
말하면 깨진다는 말은 태몽 쪽에서 나온 속신이고, 이 꿈에까지 그대로 옮겨 붙일 근거는 없다. 오히려 아침에 한 사람에게 말해 버리면 하루 종일 되뇌는 일이 줄어든다.
같은 꿈을 여러 밤 반복해서 꾸면 다른 뜻인가?
옛 속신이 반복 횟수로 길흉을 나눠 적어 둔 것은 없다. 다만 되풀이된다는 것 자체는 눈여겨볼 만하다. 마치지 못한 일이 그만큼 자주 떠오르고 있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쓸모 있다.
꿈을 꾼 날짜나 시간대가 풀이를 바꾸나?
새벽 꿈이 더 잘 맞는다는 말이 돌지만, 옛 기록이 이 꿈을 시간대로 갈라 적어 둔 것은 찾기 어렵다. 시간보다는 장면이 갈림을 만든다고 보는 편이 실제에 가깝다.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