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꿈은 정말 나쁜 소식의 예고인가?
1891년 상량문이 남은 경산의 상엿집에서는 상여만 나온 것이 아니다. 상여를 함께 메던 이들이 비용을 어떻게 나눴는지 적은 문서가 같이 전한다. 장례식 꿈을 찾아 들어온 분께 이 이야기부터 꺼내는 까닭이 있다. 옛 기록이 장례에서 길게 붙들고 있는 쪽은 떠난 이보다 그 일을 함께 치른 이웃들이고, 그래서 이 꿈자리는 흉몽으로 몰리지 않는다. 갈리는 지점은 따로 있는데, 그게 누가 죽었느냐가 아니다.
목차
장례식 꿈은 흉몽인가?
무섭게 읽는 갈래를 그대로 펴 놓고 시작한다. 장례는 실제로 무언가를 잃은 뒤에만 치르는 절차라, 그 절차를 통째로 본 밤이면 절차 이전이 먼저 떠오른다. 누가 아픈가, 연락이 뜸한 이가 있었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숫자 하나를 보고 가면 걱정의 크기가 달라진다. 캐나다 대학생 1,181명 조사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모습으로 나온 꿈을 겪어 봤다는 응답이 54.1퍼센트였다(Nielsen 외, 「The Typical Dreams of Canadian University Students」, 『Dreaming』 13권 4호, 2003, 211~235쪽). 장례 장면만 따로 센 항목은 아니고, 연구자들도 회고 응답이라 꾼 것과 꿨다고 여기는 것이 섞일 수 있다고 밝혀 두었다. 한계를 감안해도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은 한 가지를 알려 준다. 이 장면은 나 한 사람에게만 날아든 통지가 아니다.
전통 쪽은 결이 더 분명하다. 민간에 전해오는 해몽에서 상(喪)에 얽힌 꿈은 오히려 길몽으로 잡아 온 쪽이 많다. 죽음이 한 판을 끝내고 다음을 여는 매듭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 장면을 따로 다룬 죽는 꿈 해몽도 같은 결이다. 뒤집어 보면 이 꿈이 비추는 쪽은 앞날보다 지금 이 며칠이다.
그럼 옛 기록에 남은 장례는 어떤 자리였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두꾼」 항목은 상여를 메는 사람을 촌락이나 친족 단위로 동원했다고 적고, 지역 집단이 촌락 단위로 상두계를 조직해 상호부조 차원에서 상여를 멨다고 쓴다. 의무를 못 지키면 벌칙금을 냈고 차례를 번갈아 메기도 했다. 한 집의 슬픔이기 이전에 마을이 돌아가며 감당하던 일이었다.

같은 사전의 「상여소리」 항목은 이 소리가 의식요이면서 노동요라고 설명한다. 앞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메기면 상여를 멘 여럿이 뒷소리를 받는다. 슬픔을 담은 노래이기 전에 여럿의 발을 맞추려고 부른 노래였던 셈이다.
앞서 말한 경산 상엿집은 201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됐는데, 함께 전하는 문서가 상여 제작과 운반에 든 비용 기록, 그리고 상여계 운영에 관한 것들이다. 죽음을 적은 문서보다 여럿이 함께 치른 살림을 적은 문서가 두껍게 남았다.
요즘 도는 장례식 꿈 풀이는 거의 다 「누가 죽었나」로 셈한다. 내가 죽으면 새 출발, 가족이 죽으면 그쪽에 변화라는 식이다. 그런데 기록이 붙들고 있는 것은 떠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상여를 멘 사람들의 장부다. 누가 죽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느냐다.
옛 해몽과 요즘 심리가 같은 데를 가리킨다
전통 쪽 — 상은 다음을 여는 매듭이었고, 그 절차는 여럿이 붙어야 끝났다. 그래서 꿈에서도 사람이 모였는지를 봤다.
심리 쪽 — 잃는 꿈은 실제 상실보다 관계의 변화, 역할의 교체, 한 시기의 종료를 다룬다. 여기서 걸리는 쪽도 사건보다 곁이다.
내 장례식 꿈은 어느 칸에 들어가나?
장면을 쪼개 대 보면 빠르다. 조문을 가는 꿈은 옛 해몽에서 나쁘게 잡히지 않았다. 남의 상(喪)에 발을 들이는 것이라 인연이 느는 쪽으로 봤다. 부고를 받는 꿈은 소식이 온다는 뜻으로 읽었고, 그 소식이 궂다고 못 박은 대목은 드물다. 장례식장을 못 찾고 헤매는 꿈은 길흉 판정보다 상태에 가깝다. 어디로 갈지 아직 못 정했다는 표시다.
내 장례식 꿈
많이들 검색하는 것에 비해 풀이는 순한 편이다. 내가 관 안에 누워 있었다면 낡은 것을 벗는 자리로 봤다. 옆에서 내 장례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요즘 나를 한 발 떨어져 보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조문객이 북적였다면 길몽으로 읽었고, 아무도 없이 휑했다면 겁낼 징조라기보다 요즘 곁이 얇아졌다는 표시다.
가족 장례식 꿈
살아 있는 가족의 장례를 봤다면 그분의 수명과 이어 붙이지 않는 쪽이 옛 해몽에 가깝다. 관계가 한 단계 바뀐다는 뜻으로 읽어 왔다. 이미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다시 치르는 꿈은 아직 다 못 보낸 마음이 절차를 한 번 더 밟는 장면이고, 이 결은 죽은 사람 꿈 해몽 쪽에서 자세히 다뤘다. 남들은 우는데 나만 담담했다면 이미 마음으로 정리를 끝낸 일이 하나 있다는 뜻이다.
상여 나가는 꿈
상여가 집을 나서는 장면은 옛 해몽에서 가장 길하게 친 축이다. 나가는 것이 곧 매듭이었다. 내가 상여를 메고 있었다면 남의 일을 대신 지고 있다는 표시로 읽는다. 무겁게 느껴졌는지 아닌지가 답이다. 따라 걷기만 했다면 지켜보는 쪽에 서 있다는 뜻이고, 상여가 도중에 멈춰 섰다면 진행이 걸린 일 하나를 떠올려 보면 된다.
관을 보는 꿈
닫힌 관은 끝난 일로, 열린 관은 아직 손이 남은 일로 갈라 봤다. 빈 관은 유난히 무섭지만, 옛 해몽에는 아직 채우지 않은 자리로 읽는 갈래가 있었다. 관을 옮기는 꿈은 자리를 바꾸는 일이 가깝다는 쪽이다. 곡소리가 크게 들린 것 자체는 판정이 아니고, 울음이 나온 꿈은 우는 꿈 해몽의 결을 같이 보면 정리가 빠르다.
장례식 꿈이 자꾸 반복되면 무슨 뜻인가?
같은 꿈자리가 여러 밤 이어지면 옛 해몽은 뜻을 세게 잡는 대신 꾸는 이의 형편을 먼저 봤다. 현대 심리도 같은 데를 짚는다. 상실을 다루는 꿈은 실제 죽음보다 역할이 바뀌는 시기에 몰린다. 이직, 이사, 아이의 독립, 오래 맡던 일에서 손을 떼는 때다.

그러니 이 꿈에 물을 것은 앞일이 아니다. 요즘 내가 그만두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길을 함께 지나 주는 이가 누구인지다. 꿈은 명단을 보여 주지 않지만, 깨어 있는 나는 그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꿈자리가 잦아지는 때도 있다. 혼사가 잡혔을 때, 이사 날짜를 받았을 때, 기일이 다가올 때다. 절차를 앞둔 마음이 그 모양을 빌려 나오는 것이라 궂은 징조로 볼 까닭이 없다. 달력에 그런 일정이 걸려 있다면 이 꿈은 이미 설명된 셈이다.
오늘 해 볼 것을 하나만 고르면 이렇다. 한동안 못 본 사람 한 명을 떠올리고, 연락처 목록에 그 이름이 아직 있는지 확인하기. 전화를 걸 필요도, 말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눈으로 한 번 보면 된다.
상여는 혼자 나가는 법이 없었다. 꿈에서 그 뒤를 따라 걷던 사람들이 보였다면, 곁은 아직 비어 있지 않다.
자주 묻는 것들
꿈에 장례를 치른 그 사람에게 연락해도 되나요
연락해서 손해 볼 일은 없지만, 꿈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면 듣는 쪽이 놀랄 수 있습니다. 안부만 묻는 편이 낫습니다. 옛 해몽도 꿈을 본 쪽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정해 두진 않았습니다.
이 꿈을 꾸고 며칠 뒤에 실제로 부고를 들었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요
겪고 나면 꿈이 먼저 알려 준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이런 꿈자리는 워낙 흔해서 어느 시기에 꾸든 가까운 소식과 겹칠 수 있습니다. 전통 해몽도 특정한 인물이나 날짜를 지목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꿈속 상복이 검은 옷이었는데 옛날 상복과 다른 것 아닌가요
전통 상복은 삼베로 지었고 등급은 색깔로 가르지 않고 베의 거친 정도로 갈랐습니다. 사전 「상복」 항목이 참최부터 시마까지 베의 결로 다섯을 나눕니다. 검정 양복과 검정 치마저고리는 근대 이후 차림이라, 꿈속 옷 색으로 길흉을 가르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전합니다.
이 꿈이 무서워서 다시 잠들기가 어렵습니다
불을 조금 켜 두고 물을 한 잔 마신 뒤 다시 눕는 것만으로 대개 가라앉습니다. 며칠 이상 잠이 얕고 낮 생활까지 힘들어진다면, 꿈 풀이보다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