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꿈 해몽 대표이미지

메뚜기 꿈, 한철이라는 말은 끝을 가리킨 적이 없다

메뚜기 꿈을 꾸고 나서 굳이 검색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하나다. 곡식을 덮치는 벌레 떼가 흉몽의 그림으로 먼저 떠올라서다. 먼저 답부터 적는다. 메뚜기 꿈은 흉몽 목록에 크게 오른 적이 없고, 그렇다고 큰 재물을 걸 만한 길몽으로 전해오지도 않는다.

이 꿈이 애매하게 남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몽이 기대고 있는 이름 자체가 헐겁기 때문이다. 사전을 펴 봐도, 옛 기록을 따라가 봐도 사정은 같다.

목차읽는 데 약 4분

메뚜기 꿈, 한철이라는 말부터 짚는다

메뚜기에 따라붙는 말이 있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다. 이 속담 탓에 메뚜기 꿈을 곧 무언가 끝난다는 징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한철은 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철을 한창 성한 때라고 풀이한다. 성한 때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같은 사전에는 메뚜기라는 이름을 단 물건이 하나 더 올라 있다. 뛰어다니는 쪽이 아니라, 붙들어 두는 쪽이다.

마른 풀대에 앉은 메뚜기 한 마리, 메뚜기 꿈 해몽
한 마리가 앉은 논은 벼가 여물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사전에 오른 메뚜기는 둘이다

메뚜기1 책갑이나 활의 팔찌, 탕건 같은 물건에 달아서 그 물건이 벗겨지지 않도록 꽂는 기구.

메뚜기2 메뚜깃과의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불완전 변태를 하고 알로 겨울을 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쪽은 뛰어 달아나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벗겨지지 않게 꽂아 두는 것이다. 한 이름에 정반대의 일이 얹혀 있는 셈이다. 꿈에 나온 메뚜기를 달아나는 쪽으로만 읽을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

옛 기록이 황충이라 부른 것은 대개 메뚜기가 아니었다

메뚜기에 재해의 그림이 붙은 것은 해몽 전승 때문이 아니라 황충(蝗蟲)이라는 한자어 때문이다. 곡식을 결딴내는 벌레 떼를 옛 기록은 황충이라 적었고, 그 말이 오늘 메뚜기로 옮겨 읽힌다.

그런데 박해철을 비롯한 연구진이 2010년 한국응용곤충학회 학술대회 발표 논문집에 낸 글은 결이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황충 관련 기사 229건을 훑어보니 진정한 메뚜기류로 볼 수 있는 기록은 두 건뿐이었고, 나머지는 멸강나방 애벌레 같은 농업 해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꿈에 나온 메뚜기에 재앙의 이름을 얹을 근거는 옛 기록 쪽에서 얇다. 메뚜기 꿈 해몽에서 기대든 걱정이든 크게 부풀릴 이유가 없다.

박지원이 1757년에 지어 『연암별집』의 「방경각외전」에 실은 「민옹전」에도 한 대목이 있다. 관가가 황충잡이를 독려한다는 말에 민옹이, 곡식을 축내기로는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척장신의 황충이 더하다고 받아친다. 해몽서가 아니라 풍자지만, 옛사람도 이 벌레 이름을 곧이곧대로 두지 않았다.

메뚜기 꿈은 어디에 내려앉아 있었나로 갈린다

전통 해몽에서 벌레 꿈은 생김새보다 그 벌레가 놓인 자리로 갈라 읽는 쪽이 많았다. 메뚜기 꿈도 같다. 간밤 꿈자리에서 이 벌레가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떠올려 본다.

  • 가을 논이나 풀밭에 한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벼가 여물었다는 표시 쪽이라 흉하게 볼 장면이 아니다.
  • 떼로 곡식을 덮고 있었다: 벌레 떼 꿈은 축나는 쪽으로 읽혔다. 흉조라기보다 새는 데가 있다는 신호다.
  • 손에 잡혔다: 붙드는 쪽의 길한 풀이다. 마음이 쫓기던 사람에게 특히 가볍게 남는다.
  • 잡으려다 놓쳤다: 아쉬움이 남아도 흉몽으로 전해온 장면은 아니다.
  • 뛰어서 멀리 달아났다: 지금은 붙들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쪽으로 읽힌다.
  • 방 안이나 곳간으로 들어와 있었다: 손볼 데가 있다는 쪽이다. 들어온 틈이 어디였는지를 본다.
  • 그릇이나 병에 담아 두었다: 갈무리하는 장면이라 흉하게 읽은 기록이 드물다.
  • 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못 봤다: 아직 형체가 안 잡힌 걱정이라는 심리 쪽 해석이 어울린다.

여덟 칸 중 어디에도 딱 맞지 않아도 괜찮다. 메뚜기 꿈은 길흉을 크게 갈라 둔 꿈이 아니라, 꿈자리의 결만 잡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벼가 익은 가을 논, 메뚜기 꿈을 풀 때 떠올릴 자리

메뚜기 꿈 변형 세 가지

메뚜기 떼 꿈

가장 걱정을 사는 장면이다. 곡식을 덮는 벌레 떼는 예로부터 재물이 새는 쪽으로 읽혔지만, 옛 기록의 황충은 메뚜기와 잘 맞지 않는다. 흉조라기보다 재물이 조금씩 새는 데가 있는지 세어 보라는 신호다.

메뚜기 잡는 꿈

벌레 꿈에서 잡는 장면은 대체로 붙드는 쪽으로 읽혔다. 여럿을 담은 꿈은 거두는 그림이고, 한 마리를 오래 쫓은 꿈은 지금 한 가지에 마음이 붙들려 있다는 표시에 가깝다.

메뚜기가 몸에 붙은 꿈

벌레가 몸에 붙는 꿈은 대개 찜찜하게 남는다. 옛 풀이에서 몸에 붙은 벌레는 떼어 낼 것이 있다는 쪽이었고, 무는 벌레가 아니면 그 강도를 훨씬 약하게 봤다. 놀란 마음만 가라앉히면 되는 꿈자리다.

30초 요약

  1. 메뚜기 꿈은 흉몽으로도 큰 길몽으로도 전해온 꿈이 아니다. 기대를 정직하게 깎고 보는 편이 낫다.
  2. 메뚜기 꿈 해몽의 갈림길은 길흉이 아니라 장면이다.
  3. 한철은 끝이 아니라 한창 성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4. 옛 기록의 황충 229건 중 진짜 메뚜기로 볼 수 있는 것은 두 건뿐이었다.
  5. 풀이는 마릿수보다 내려앉은 자리에서 갈린다. 논이냐, 곳간 안이냐를 먼저 본다.
  6. 사전에는 벗겨지지 않게 꽂아 두는 물건에도 메뚜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 요즘 헐거워진 것 하나를 고른다. 미뤄 둔 답장이든 흐지부지된 약속이든 상관없다. 오늘 안에 그 하나만 제자리에 꽂아 둔다. 탕건이 벗겨지지 않게 꽂아 두던 그 작은 기구가 하던 일이 딱 그만큼이었다.

메뚜기 꿈을 자꾸 되짚게 되는 계절이 있다. 벼가 익을 무렵이 그렇다. 지금 무엇이 한철인지 한 번 세어 보는 것으로 이 꿈자리는 제 몫을 다한다.

곡식 쪽 꿈을 더 보고 싶다면 쌀 꿈 해몽을, 벌레 꿈 전반이 궁금하다면 벌레 꿈 해몽을, 같은 벌레라도 종류로 갈라 읽은 사례는 나비 꿈 해몽을 함께 보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메뚜기 꿈도 태몽이 될 수 있나?

태몽으로 전해오는 벌레는 대체로 나비나 잠자리 쪽이고, 메뚜기를 태몽으로 못박은 전승은 두껍지 않다. 다만 꿈을 꾼 시기와 사정이 겹치면 태몽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예전에도 있었다.

메뚜기인지 방아깨비인지 여치인지 헷갈린다.

구별이 안 됐어도 해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통 풀이에서 이 계열의 벌레는 한 묶음으로 다뤄졌고, 갈라 읽는 기준은 종류보다 장면이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만 기억나면 충분하다.

메뚜기 꿈을 여러 날 연달아 꿨다.

같은 꿈자리가 반복되는 것은 낮에 붙들고 있는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읽힌다. 길흉을 다시 재기보다, 요즘 무엇이 마음에 걸려 있는지 한 줄로 적어 보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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