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꿈을 꿨어도 사전이 적어 둔 길은 그 하나가 아니었다
무당 꿈을 꾸고 새벽에 검색창을 연 분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말은 대개 하나다. 신이 부르는 표시라는 말이다. 걱정될 만한 말이고, 새벽에 깬 채로 한 번 읽으면 잘 놓이지도 않는다. 먼저 한 줄로 답하면, 이 꿈자리는 흉몽으로 못 박을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사전을 펴 보면 그 말이 설 데가 생각보다 좁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낱말을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풀어 두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신을 섬기고 굿 의례의 집전을 전문으로 하는 종교인」이라고 적었다. 두 곳 다 하는 일을 적어 두었다. 타고난 팔자를 적은 대목은 어느 쪽에도 없다.
그리고 사전에는 한 겹이 더 있다. 이 이름 아래 갈라 둔 길이 둘이라는 것인데, 그 갈림을 알고 나면 지난밤 꿈을 읽는 방향 자체가 달라진다. 먼저 그 둘부터 본다.
목차
사전은 이 이름에 앉는 길을 둘로 갈라 두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당」 항목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두 유형으로 나눠 적었다. 하나는 강신무다. 항목의 말로는 「강신체험을 통하여 된 무당으로서, 그 성무 동기는 강신으로 인한 신의(神意)에 있다」. 신이 내려서 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세습무다. 「혈통을 따라 사제권이 대대로 계승되는 무당으로서, 성무의 동기는 사제권의 인위적인 세습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길은 신이 부른 것과 상관이 없다. 집안에서 물려받는다. 항목은 세습무 쪽의 배움이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적어 두었는데, 혼인이 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굿판에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다고 한다. 부름을 거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익히는 일이었다는 뜻이다.
두 갈래는 지역으로도 나뉜다. 「강신무」 항목은 「대체로 중부 이북지방의 무당이 이 유형에 속하며, 남부지방의 무당은 세습무(世襲巫) 유형에 속한다」고 적었다. 이름도 한 가지가 아니어서, 호남에서는 단골이라 했고 제주에서는 심방이라 했다. 남자가 이 일을 하면 격(覡)이라 하거나 박수·화랭이·양중이라 불렀다.

신병이라 불린 것, 그 안에 꿈이 한 줄 적혀 있다
강신무에는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다. 「강신무」 항목은 그것을 신병이라 부르며 이렇게 적었다. 「신병은 무병(巫病)이라고 하는데, 환상과 환영·질병 등 일정한 정신적·육체적 증세를 통해서 일어나는 종교적 체험이며」. 「무당」 항목은 그 증세 목록 안에 꿈을 함께 올려 두었다. 꿈이 많아지고, 꿈속에서 어떤 지시를 받기도 하고, 꿈과 생시의 구분이 흐려진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림굿이라는 의례를 거쳐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한 가지가 눈에 걸린다. 사전이 꿈을 올려 둔 데는 무당이 나오는 꿈이 아니다. 그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꾸는 꿈이다. 꾸는 사람과 꿈에 나오는 사람의 위치가 서로 맞바뀐다. 흔히 도는 풀이는 이 방향을 뒤집어 놓고 「무당이 보였으니 부름이다」로 읽어 왔는데, 사전 어디에도 그렇게 이어 놓은 줄은 없다.
게다가 사전이 적어 둔 그 길은 꿈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앓는 일이 있고, 그것을 앓는 기간이 있고, 받는 의례가 있고, 남부 쪽이라면 갈림이 아예 혼인과 혈통에 있었다. 꿈은 그 줄 가운데 한 항목이다.
무당 꿈, 간밤 그 자리는 어느 쪽이었나
아래 칸은 사전이 매겨 둔 풀이표가 아니다. 위에서 본 갈림 하나를 가지고 이 글에서 만든 칸이니, 맞는 칸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나가셔도 된다. 묻는 것은 늘 같다. 부른 쪽이 있었나, 없었나.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했나. 나를 불러 세웠나. 밖에서 온 요구가 있다는 그림이다. 지금 내 자리에 대 보면 누가 내게 무엇을 맡기려는 참으로 읽는다. 내가 먼저 찾아갔나. 그러면 물음이 내 쪽에서 먼저 났다는 뜻이고, 답답한 것 하나를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으로 본다. 서로 지나쳤나. 지나친 꿈자리는 전통 해몽에서도 대체로 가볍게 봤다. 나를 못 본 체했나. 옛 풀이도 이런 장면을 흉몽 칸에 넣지 않았다. 아직 내 차례가 안 왔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실제에 맞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오갔나. 무슨 말을 들었나. 들은 말이 또렷할수록 요즘 마음에 걸려 있던 문장 하나가 그대로 올라온 경우가 많다. 아무 말도 없었나. 침묵한 꿈은 답이 아직 안 정해졌다는 표시로 본다. 나쁜 쪽에 세울 일은 없다. 내가 무엇을 건넸나. 건넨 꿈에는 내가 이미 치르고 있는 값이 있다. 내가 무엇을 받았나. 받은 꿈은 옛 어른들이 길몽으로 치던 그림이고, 받은 물건이 또렷하면 그 물건 쪽 해몽을 함께 본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 굿을 하고 있었나. 이 칸은 아래 변형에서 따로 보되, 우선은 치르는 절차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그림으로 읽으면 된다. 옷을 갈아입고 있었나. 채비하는 장면은 아직 시작 전이라는 표시라 흉몽으로 읽을 까닭이 없다. 앉아만 있었나. 기다리는 그림이라 서두를 일이 없다고 본다. 떠나는 중이었나. 마무리 장면이라 매듭지어 가는 일이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그 사람이 누구였나. 낯선 사람이었나. 낯선 얼굴은 내 바깥의 판단을 뜻하는 몫으로 자주 쓰인다. 아는 사람이었나.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먼저 본다. 돌아가신 분이었나. 이 대목은 조상 꿈 쪽 결이 섞이니 무섭게만 볼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이 그 앞에 서 있었나.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그 앞에 서 있던 꿈이라면 조금 서늘했을 것이다. 다만 사전이 적어 둔 그 길은 꿈에서 옷을 입어 보는 것으로 열리지 않는다. 앓는 일과 의례와 가르치는 사람이 줄줄이 붙어 있다. 꿈에서 남의 몫에 서 보는 일은 그 몫의 무게를 요즘 내가 지고 있다는 그림 쪽으로 훨씬 자주 읽힌다.

무당 꿈 해몽에서 자주 갈리는 다섯 자리
앞서 본 두 항목이 담고 있는 것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의 유형과 들어서는 경로, 그리고 지역마다 달랐던 이름까지다. 개별 꿈을 어떻게 읽으라는 줄은 두 항목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아래는 전해오는 풀이와 이 글의 읽기를 갈라 적는다.
무당이 나에게 말을 거는 꿈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에서는 말을 걸어 온 쪽이 있으면 알려 줄 것이 있는 자리로 봤다. 이것을 오늘 쪽으로 당겨 읽으면, 내 안에서 정리가 끝난 문장이 밖의 목소리를 빌려 나온 장면 쪽이다. 들은 내용이 또렷하면 그 문장을 한 번 적어 두는 정도로 충분하다.
굿 하는 꿈
굿 하는 꿈을 크게 나쁜 쪽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사전이 적어 둔 굿은 치르는 의례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대목이다. 일을 불러오는 자리로 적힌 데는 없다. 마음이 어지러운 새벽에 이 꿈자리가 오면 정리하고 싶은 것이 쌓여 있다는 신호로 읽으면 된다.
무당이 되는 꿈
가장 놀라기 쉬운 칸이다. 그런데 사전이 적어 둔 성무에는 앓음과 의례와 배움이 차례로 놓여 있었고, 남부 쪽은 그 문이 아예 혈통에 있었다. 이 꿈은 요즘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 버겁다는 쪽으로 읽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점을 보는 꿈
무엇을 물었는지가 답이다. 옛 풀이에서도 묻는 꿈은 결정을 앞둔 사람에게 자주 온다고 봤다. 물은 내용이 기억나면 그 하나가 요즘 가장 큰 물음이고, 해몽은 거기서부터 잡으면 된다.
무당집에 가는 꿈
찾아가는 꿈은 내 쪽에서 움직인 그림이라 기다리는 꿈과 결을 달리 본다. 도움을 청할 데를 찾고 있다는 뜻이고, 전통 풀이도 이 장면을 흉조로 적지 않았다. 다만 꿈이 어디로 가라고 일러 주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답을 구할 곳은 이 꿈 밖에서 고르시면 된다.
무당 꿈 뒤에 오늘 해도 되는 일 하나
이 꿈 한 장이 앞날을 정해 버린 것 같으셨다면, 오늘은 그 꿈을 사전이 줄지어 적어 둔 여럿 가운데 하나로 머릿수에 넣어 두기를 권한다. 그 목록에는 앓음과 의례와 배움이 들어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혼인까지 들어 있다. 꿈은 그중 한 줄이고, 한 줄만으로는 무엇도 정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여럿이라면, 그중 하나는 오늘 하루만 제쳐 두시면 된다. 이 꿈이 마음에 걸린 날은 판단이 평소보다 무거워진다. 무거운 판단을 하루 미뤄 두는 것도 고르는 일에 든다. 제쳐 둔 것이 오늘 안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판단이 훨씬 가벼워진다.

무당 꿈이 유독 오래 남는 까닭
이 꿈이 다른 꿈보다 오래 남는 데는 까닭이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 사람은 꿈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게 읽는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나온 꿈은 뜻이 있다고 여기고 싫어하는 사람이 나온 꿈은 그냥 꿈이라고 여겼다는 결과다(Morewedge & Norton, 「When dreaming is believing: The (motivated) interpretation of dream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6권, 2009). 다만 이 연구가 재 본 것은 읽는 사람 쪽이 실리는 폭이다. 무엇이 길몽이고 무엇이 흉몽인지까지 정해 주지는 않는다.
무당 꿈처럼 무게가 실린 장면은 그 폭이 더 벌어진다. 불안한 사람은 부름으로 읽고, 결정을 앞둔 사람은 답으로 읽는다. 같은 꿈자리가 사람에 따라 갈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해몽이 여러 갈래로 전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관련해 꿈을 읽는 큰 갈래는 꿈해몽 풀이의 기본에 따로 적어 두었다.
사전이 적어 둔 그 길에는 거쳐야 할 것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몸이 먼저 앓았고, 그다음에 의례가 왔고, 그러고도 곁에서 오래 배웠다. 어느 칸도 하룻밤에 건너뛰어지지 않는다.
무당 꿈 해몽, 사전 밖에서 자주 오는 물음 넷
꿈에 본 사람의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흔한 일이다. 꿈은 대개 인물보다 장면의 분위기를 남긴다. 얼굴이 안 잡히면 위의 대입 칸 가운데 「무엇이 오갔나」 묶음만 보셔도 된다. 남아 있는 조각만으로 충분하다.
같은 무당 꿈을 여러 번 꿉니다
되풀이되는 꿈자리는 예지보다 요즘 반복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꿈이 반복된다는 사실보다, 그 며칠 사이에 무엇이 반복되고 있었는지를 먼저 떠올려 보시면 된다.
이런 꿈도 태몽이 될 수 있나요
태몽으로 전해오는 소재 목록에 이 장면이 올라 있지는 않다. 다만 태몽은 본인과 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크게 작용해 온 영역이라, 좋게 받아들이셨다면 그대로 두셔도 괜찮다.
이 꿈 뒤로 마음이 계속 무겁습니다
꿈 하나가 며칠씩 마음을 누르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래도 잠이나 일상이 눈에 띄게 흔들릴 만큼 이어진다면,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거나 전문가와 한번 상의해 보시는 편이 낫다. 해몽이 할 수 있는 몫은 여기까지다.
비슷한 결로 놀라서 찾아오신 분들이 많은 갈래로는 귀신 꿈과 도깨비 꿈이 있고, 얼굴을 가린 것이 나온 꿈이라면 탈 꿈 쪽이 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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