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꿈 해몽 썸네일

웃는 꿈이라 해도, 이 해몽은 웃음부터 보지 않는다

간밤 꿈에서 웃었다. 깨고 나서도 그 웃음이 입가에 남아 있는데, 반가워해도 되는 꿈자리인지 아닌지가 영 안 잡혀서 검색창을 열었을 것이다. 방향부터 말해 두면 웃는 꿈은 대체로 길한 쪽에 서는 꿈이다. 그런데 이 해몽에서 정작 길흉이 갈리는 자리는 웃음의 크기도, 소리도, 웃은 까닭도 아니다. 간밤 그 웃음 곁에 누가 있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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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꿈은 웃음보다 곁을 먼저 본다

널리 도는 풀이는 둘로 갈린다. 하나는 좋은 일이 온다는 길몽 쪽, 하나는 실없이 웃으면 곧 울 일이 생긴다는 흉몽 쪽이다. 그런데 이 해몽을 쓰면서 옛 얼굴이 남아 있는 전통 자료를 두 항목이나 들췄는데, 거기에는 웃는 꿈을 길하다거나 흉하다고 적어 둔 대목이 한 줄도 없었다. 널리 쓰이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어디서 왔는지가 잡히지 않았다. 없는 근거를 있는 것처럼 옮겨 놓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래서 이 풀이는 길흉을 미리 매겨 두고 시작하지 않는다. 옛 자료가 실제로 남겨 둔 것을 따라간다. 그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이 하나 있는데, 웃음이 혼자 짓는 표정으로 다뤄진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땅에 남은 웃는 얼굴도, 웃음을 세어 본 연구도 같은 데를 짚는다. 그러니 간밤 꿈속 장면을 떠올릴 때 웃음의 크기를 재기 전에 화면 가장자리를 먼저 보시면 된다. 거기 누가 있었는가.

턱이 따로 달린 얼굴 — 웃는 낯과 성난 낯이 한 장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항목은 이 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이웃 마을인 병산리에 전해오는 탈」로 적는다. 하회탈은 열 종 열한 개가 남아 있고, 만들어진 때는 고려 중기, 그러니까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로 본다.

이 항목에서 눈이 멎는 대목은 따로 있다. 「중·양반·이매·선비·백정탈들은 턱을 따로 달아 움직일 수 있어 표정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표정이 한 얼굴에 붙박여 있지 않고, 쓴 사람이 고개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웃는 낯이 되기도 하고 성난 낯이 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같은 항목은 양반탈을 두고 「실눈을 하고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적는다. 웃는 표정으로 깎아 둔 얼굴인데, 그 웃음마저 턱 하나로 뒤집히게 지어 놓은 것이다.

웃는 꿈 해몽에 함께 보는 나무로 깎은 탈
나무를 깎아 만든 탈 — 웃는 낯인지 성난 낯인지는 쓴 사람의 각도가 정했다 (사진은 하회탈 실물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것이 있다. 이 얼굴은 방 안에서 혼자 쓰던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 쓰려고 깎은 것이고, 웃음이 원래 어디에 걸려 있던 것인지가 여기서 한 번 드러난다.

간밤 그 웃음 곁에 누가 있었나 — 열여섯 칸

아래 열여섯 칸은 전해오는 해몽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고, 위에서 본 「곁」을 기준으로 간밤 꿈자리를 갈라 본 것이다. 자기 꿈이 어느 칸에 앉는지만 찾으시면 된다.

혼자 웃던 자리

간밤 꿈에서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웃고 있었다면, 요즘 마음속에서만 굴리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는 뜻으로 읽어 볼 수 있다. 꿈에서 물이나 거울에 비친 내가 웃고 있었다면 남이 보는 내 얼굴과 내가 아는 내 얼굴 사이가 궁금해진 때다. 웃음소리만 들리고 사람이 안 보였다면 소식은 왔는데 누가 보낸 것인지가 아직 안 잡힌 상태에 가깝다. 웃다가 문득 멈췄다면 그 멈춘 지점이 오히려 눈여겨볼 자리다.

마주 보고 웃던 자리

아는 사람과 마주 보고 웃었다면 그 사람 쪽 일이 잘 굴러간다는 길몽으로 읽어도 무겁지 않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웃었다면 곧 새로 트일 자리가 하나 있다는 쪽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웃었다면 이 꿈이 가장 길하게 서는 칸이다. 상을 앞에 두고 웃던 꿈이었다면 먹는 자리 쪽 해몽이 더 두꺼우니 그쪽을 함께 보시면 된다.

남이 웃는 걸 보던 자리

남들은 다 웃는데 나만 안 웃고 있었다면, 지금 어느 자리에서 조금 겉돈다고 느끼는 마음이 그대로 비친 꿈자리일 수 있다. 누가 나를 보고 웃었다면 그 웃음의 결이 어땠는지를 떠올려 보시라.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다면 남의 말이 신경 쓰이는 때에 흔히 나오는 꿈자리다. 웃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면 그 사람보다 그 자리를 먼저 보는 편이 낫다.

웃음의 결이 이상하던 자리

이 꿈에서 웃는데 소리가 안 났다면 하고 싶은 말이 목에 걸려 있다는 쪽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웃다가 눈물이 났다면 한 감정이 다 못 빠져나온 상태다. 참으려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면 눌러 두고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겠고,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서 웃었다면 깨고 나서 제일 마음이 불편했을 칸일 텐데, 이 꿈자리는 그 사람이 지금 마음에 걸려 있다는 표시에 가깝다. 죄를 묻는 장면으로 옮겨 읽을 까닭은 없다.

웃음이 나는 자리를 세어 본 연구

웃음을 실제로 세어 본 사람이 있다. 로버트 프로바인은 사람들이 언제 웃는지를 일기와 관찰로 모아 정리했는데(Robert R. Provine,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3권 6호, 2004, 215~218쪽), 거기 적힌 것이 셋이다.

첫째, 웃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른 배 자주 났다. 둘째, 웃기 바로 앞에 나온 말 가운데 웃긴 축에 드는 말은 열에 하나에서 열다섯쯤에 그쳤다. 나머지는 「그럼 이따 봐」 같은 평범한 말이었다. 셋째, 대화에서 더 많이 웃은 쪽은 말하는 사람이었다. 듣는 쪽보다 평균 46퍼센트 더 웃었다. 이 수치들의 바탕이 된 기록은 그가 카렌 피셔와 함께 일주일치 일기를 모아 낸 연구다(Provine & Fischer, 『Ethology』 83권, 1989, 295~305쪽). 미국 대학생의 일기와 공공장소 관찰이 표본이니, 사람과 때가 다르면 숫자도 달라진다는 것은 같이 적어 둔다.

이 셋을 나란히 놓으면 우리가 웃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긴 차례가 흔들린다. 웃겨서 웃는다는 순서가 먼저 오지 않는다. 곁에 사람이 있어서 웃음이 나고, 그 웃음이 말 사이사이에 놓이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 웃으면 복이 온다고 알고 있던 차례는 한 번 뒤집어 세워 보셔도 좋다. 웃어서 사람이 따라오는 순서보다 사람이 곁에 있어서 웃음이 나는 순서에 가깝다면, 간밤 그 웃음은 앞날을 미리 알려 준 징조로 읽기에는 결이 다르고 지금 내 곁을 비춘 거울에 훨씬 가깝다.

웃는 꿈이 갈리는 다섯 자리

크게 웃는 꿈

간밤 꿈에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면, 그 크기 자체를 길흉의 잣대로 쓰지는 않는다. 위에서 본 대로 웃음의 세기는 웃긴 정도보다 자리에 더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크게 웃는 꿈은 곁에 사람이 여럿 있을 때 나오기 쉬우니, 그 점에서 길하게 읽을 여지가 넓다. 술자리에서 웃던 꿈이었다면 마시는 쪽 해몽과 겹치는 데가 있어 함께 보시면 답이 좁아진다.

남이 웃는 꿈

나는 가만있는데 남이 웃고 있는 꿈자리는 깨고 나서 기분이 애매하게 남는다. 이 칸은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그저 그 자리에서 난 것이었는지로 갈라 보시면 된다. 나를 향했다고 느껴졌다면 요즘 남의 시선에 마음이 많이 가 있다는 표시로 읽는 편이 실제에 가깝다. 흉몽 쪽으로 옮길 대목은 아니다.

웃다가 우는 꿈

한 꿈 안에서 감정이 뒤집히는 일은 드물지 않다. 웃음과 울음은 몸으로 보면 숨을 몰아쉬는 방식이 비슷해서 서로 넘어가기 쉽다. 이 꿈자리는 감정이 크다는 뜻이지 결과가 뒤집힌다는 뜻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는 쪽이 더 길게 남은 꿈이었다면 그 편의 풀이가 더 두꺼우니 그쪽을 보시는 편이 낫다.

죽은 사람이 웃는 꿈

돌아가신 분이 웃는 낯으로 나온 꿈을 흉몽으로 읽지 않는 갈래가 널리 돈다. 다만 그 갈래를 이 편에서 길게 풀지는 않겠다. 돌아가신 분이 나온 꿈조상이 나온 꿈이 각각 제 자리를 따로 갖고 있어서, 거기서 훨씬 촘촘하게 다뤄 두었다.

아기가 웃는 꿈

아기가 웃는 꿈은 태몽으로 여겨 보는 사람이 많다. 태몽으로 읽고 싶다면 그렇게 읽으셔도 좋지만,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이 꿈이 아니라 병원이 볼 몫이다. 태몽으로 읽지 않는다면 이 칸은 요즘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일 하나가 순조롭다는 쪽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웃는 꿈 해몽에서 곁을 보는 이유를 담은 함께 웃는 자리

혼자 웃던 자리라면 — 웃는 꿈에서 눈여겨볼 데

앞의 연구가 적어 둔 것 가운데 하나를 다시 가져오면, 혼자 있을 때 웃는 일은 드물었다. 서른 배라는 숫자는 뒤집어 말하면 혼자 웃는 꿈이 그만큼 흔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간밤 꿈자리가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웃는 장면이었다면 그 칸만 조금 더 들여다볼 값이 있다.

이 대목에서 옛 얼굴을 한 번 더 보면 방향이 잡힌다. 같은 사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항목은 이 놀이를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전승되어오는 탈놀이」로 적고, 각시의 무동마당·주지놀이마당·백정마당·할미마당·파계승마당·양반과 선비마당 여섯 마당으로 짜여 있다고 정리한다. 1980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여섯 마당 어느 하나도 혼자 하는 마당이 없다. 웃는 얼굴을 쓰고 나서는 자리는 언제나 마을 사람들이 둘러선 앞이었다.

그러니 혼자 웃는 꿈을 두고 겁을 먹을 까닭은 없되, 이 칸이 나왔다면 요즘 웃을 자리 자체가 줄지 않았는지를 한 번 확인해 보실 값은 있다. 이건 앞날에 무슨 일이 예고됐다는 흉조와는 결이 다르고, 지금 마음의 형편을 비춘 꿈 화면에 가깝다. 혹시 깨고 난 뒤에도 마음이 계속 무겁게 눌려 있다면 그건 꿈 풀이로 다룰 일이 아니니,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와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편이 낫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

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오늘 몫은 어렵지 않다. 이번 주 안에 누구와 마주 앉을지를 정해서 그 하루를 비워 두시면 된다. 약속을 잡으시라는 뜻은 아니고, 자리를 하나 남겨 두시라는 뜻이다. 목요일 저녁 하나를 비워 두는 정도로 충분하다.

비워 두면 웃음이 날 자리가 하나 생긴다. 앞에서 본 셋 가운데 첫째가 그것이다. 웃음이 웃긴 말에서보다 마주 앉은 사람에게서 난다면, 웃음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자리를 하나 비워 두는 편이 손이 덜 간다. 그리고 그 자리가 정해지고 나면, 간밤 꿈이 길몽이었는지 아닌지를 굳이 더 따질 마음도 대개는 가라앉는다.

웃는 꿈 뒤에 자리를 하나 비워 두는 뜻을 담은 마주 놓인 두 의자

웃는 꿈 해몽에 자주 묻는 것들

왜 웃었는지가 기억이 안 납니다

안 떠올려도 답은 나온다. 앞에서 본 대로 웃기 직전의 말이 웃긴 말인 경우가 열에 하나 남짓이었으니, 까닭은 원래 웃음의 주된 이유가 아니다. 기억나는 것이 「누가 있었다」 하나뿐이어도 이 해몽의 열여섯 칸은 다 쓸 수 있다.

웃는 꿈을 꾸고 나면 곧 울 일이 생긴다던데요

그 말의 출처를 찾아보았는데 잡히지 않았다. 옛 얼굴이 남아 있는 자료에도 웃는 꿈을 그렇게 적어 둔 대목은 없었다.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말을 붙들고 하루를 무겁게 보내실 까닭은 없다는 뜻이다.

같은 웃는 꿈을 며칠째 꿉니다

되풀이되는 꿈자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표시로 다루지 않는다. 요즘 그 꿈속 장면과 닮은 일이 실제로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는 풀이가 자연스럽다. 며칠째 같은 얼굴이 나온다면 그 얼굴이 누구였는지만 적어 두시면 된다.

정리하면 이 꿈은 웃음의 크기로 갈리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떠올려 보시면 좋겠다. 간밤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가. 혼자였는가, 마주 본 사람이 있었는가, 아니면 웃는 쪽은 남이고 나는 보고만 있었는가. 셋 중 어디에 앉는지가 정해지면 이 꿈은 대개 제 할 일을 다 한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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