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꿈이 꺼림칙했다면 옛사람이 이 짐승을 부르던 이름을 보면 된다
먼저 결론부터 적는다. 지렁이 꿈은 전해오는 어느 갈래로 읽어도 크게 흉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답이 두 갈래로 갈리는 지점이 하나 있다. 생김새가 아니라 그 짐승이 있던 자리다.
목차
지렁이 꿈, 전해오는 해몽은 어디에 세웠나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에서 이 짐승은 재물과 태몽 두 갈래에 나란히 걸려 있다. 땅속에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그림이라 살림이 불어나는 조짐으로 봤고, 한 마리가 여럿으로 늘어나는 장면은 사람이 붙거나 식솔이 는다는 의미로 잡았다. 흙과 붙어 사는 짐승이라 곡식·농사 쪽으로 옮겨 읽는 자리도 있다.
겁은 대개 풀이에서 오지 않고 깨어난 뒤의 감각에서 온다. 꿈틀거리던 것이 손에 닿았거나 발밑에 밟혔던 밤이면 아침까지 그 촉감이 남는다. 그런데 사전이 적어 둔 이 짐승의 사는 자리는 흙 속과 호수·하천·동굴이다. 그러니 이 꿈에서 먼저 볼 것도 꺼림칙함의 세기보다 그 짐승이 젖은 데 있었는지 마른 데 있었는지다.
지렁이 꿈 변형 넷 — 장면이 갈리는 데
지렁이가 많이 나오는 꿈
여럿이 한꺼번에 나온 밤은 늘어나는 쪽으로 읽는 갈래가 많다. 셈이 붙는 일, 사람이 모이는 일, 손이 여럿 필요해지는 일에 걸어 봤다. 숫자가 많아 놀랐더라도 그 놀람까지 흉으로 세지는 않았다.
지렁이를 잡는 꿈
손에 쥐었다는 것은 흙 밑에 있던 것을 내가 건져 올렸다는 그림이다. 오래 안 보이던 성과가 손에 잡히는 길몽으로 본다. 잡았다가 놓친 밤은 시기가 미뤄진다는 정도로 잡았다.
지렁이가 몸에 붙거나 몸에서 나오는 꿈
겁이 가장 크게 남는 장면인데, 전해오는 결은 몸보다 마음 쪽을 가리킨다. 오래 신경 쓰던 것이 표를 냈다는 의미로 봤다. 몸에서 나온 밤은 안에 담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그림이라 오히려 풀림 쪽에 놓는 해몽이 흔하다. 실제 몸이 걱정되어 검색까지 오신 것이라면 이 꿈보다 진료에서 답을 받는 편이 빠르다.
지렁이를 죽이는 꿈
없애는 동작이라 마음이 무거워지기 쉽다. 다만 전해오는 풀이에서 이 짐승은 해를 끼치는 것으로 세지 않으니, 죽인 밤도 벌을 부르는 대목이 되지 않는다. 붙들고 있던 일을 내 손으로 끝맺겠다는 마음이 장면을 빌려 나온 밤으로 보면 된다.

깨고 나서 남는 것이 꺼림칙함뿐일 때
요즘 마음 쪽으로 옮겨 놓고 보면 이 짐승은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오래 하던 일에 붙는다. 흙 밑에서 하던 일은 지나가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요즘 해 놓은 것이 남에게 하나도 안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감각이 잠든 사이 모양을 찾은 밤일 수 있다.
꺼림칙함도 같은 데서 나온다. 사람은 흙 밑에 있어야 할 것이 눈앞에 올라와 있을 때 놀란다. 놀라게 한 것은 순서다. 나올 데가 아닌 곳에 나와 있었다는 감각이 그 밤의 불쾌를 만들었고, 그 감각은 낮에 겪은 일에 붙어 있을 때가 많다.
사전이 이 짐승 앞에 적어 둔 이름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지렁이」 항목(김훈수 집필, 1995)은 이 짐승의 한자 이름을 여러 개 나란히 실어 놓았다. 구인(蚯蚓), 지룡(地龍), 토룡(土龍), 가녀(歌女), 한인(寒蚓) 같은 것들이 있고, 울 명(鳴) 자가 앞에 붙은 명체라는 이름도 함께 올라 있다. 우리말 옛 이름으로는 디룡이, 지룡이, 지릉이가 함께 올라 있다.
목록을 천천히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용(龍) 자가 두 번 들어가 있고, 우는 것·노래하는 것을 뜻하는 글자가 또 두 번 들어가 있다. 땅속의 용, 흙의 용, 우는 벌레, 노래하는 여자. 낮잡아 부르려고 지은 이름표로 보기는 어려운 목록이다.
그런데 속담 쪽에서는 그 용 자가 반대편에 선다. 「지렁이 룡 되는 시늉 한다」는 이룰 수 없는 헛된 바람을 비꼬는 말이다. 이름표에는 이미 용이 붙어 있는데, 속담은 용이 되려고 흉내 내는 동작을 비웃는다. 다만 이 속담은 위 사전 항목에 올라 있지 않다. 그 항목의 속담 칸에 실린 것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와 「지렁이 갈빗대」 둘이고, 룡 되는 시늉 쪽은 널리 쓰이는 말을 이 글이 밖에서 끌어온 것이다(항목 재확인 2026-10-19).
여기서 갈라 둘 것이 있다. 이름은 사전에 실린 그대로이고, 속담은 출처가 둘로 갈린다. 한 낱말이 반대 방향으로 쓰였다는 데서 무엇을 읽을지는 이 글이 정한 몫이다. 사전은 둘 중 어느 편이 이 짐승의 참값이라고 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도 하나를 고르지 않고 둘을 같이 싣는다.
둘을 같이 놓으면 방향이 하나 보인다. 속담이 비웃은 것은 되려고 흉내 내는 동작이었다. 흙 밑에 있는 동안 이 짐승은 이미 용 자가 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널리 쓰이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도 뜻을 그대로 펴 보면, 눌려 지내는 편이라도 너무 업신여기면 가만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렁이 꿈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사전은 둘 다 적어 두었다
같은 항목이 이 짐승을 약 쪽에도 올려 두었다. 사전은 ≪동의보감≫을 끌어와 「구인은 성이 한(寒)하고, 맛이 짜고, 독이 없다(독이 약간 있다고도 함)」고 적었다. 구인은 앞에서 본 그 한자 이름이다. 몸에 넣어도 되는 것으로 쳤다는 뜻이고, 그러면서도 독이 약간 있다는 말을 괄호에 같이 달아 두었다.
해 쪽 기록도 있다. 사전은 ≪규합총서≫에서 석류를 심을 때 뿌리에 지렁이가 들면 죽으니 뜨물을 주면 없어진다는 대목을 옮겨 놓았다. 같은 짐승이 한 자리에서는 약이고 다른 자리에서는 뿌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편이 참값인지는 여기서도 정해 주지 않는다. 나뉜 것은 짐승 자체가 아니다. 그 짐승이 놓여 있던 자리가 달랐다.
그래서 이 꿈을 길흉으로 먼저 가르려 하면 답이 안 나온다. 사전이 이름에서 용과 속담을 같이 실어 둔 것과 같은 모양이다. 간밤에 그것이 내 쪽으로 온 것이었는지, 무엇에 붙어 있던 것이었는지를 먼저 정해 두면 아래 칸에서 방향이 잡힌다.
덧붙여, 같은 항목에는 「지렁이 갈빗대」라는 속담도 올라 있다. 뜻풀이는 사전이 달아 두지 않아 이 글도 풀이를 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 짐승이 옛말에 한 번 나오고 만 것이 아니라 여러 자리에 나뉘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은 이 한 줄로도 보인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렁이」(김훈수 집필, 최종수정 2025-03-31) — ≪동의보감≫·≪규합총서≫ 인용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지렁이 갈빗대」 두 속담, 몸길이와 ≪오주연문장전산고≫ 대목은 이 항목에 실린 그대로다. 「지렁이 룡 되는 시늉 한다」는 이 항목에 없고 널리 쓰이는 속담을 이 글이 끌어왔다(항목 재확인 2026-10-19).
큰 지렁이, 하얀 지렁이, 먹는 꿈 — 생김새 쪽을 묻는 밤
간밤에 본 것이 유난히 컸거나 빛깔이 하얬다면, 또는 그것을 먹는 장면이었다면 흙보다 생김새가 먼저 걸린다. 이 칸은 그 세 가지를 따로 받는다. 먼저 전거 쪽 사정을 밝혀 둔다. 위 사전 항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도 크기나 빛깔에 길흉을 붙인 대목은 한 줄도 없다.
유난히 컸던 밤 — 크기는 전거가 다루는데, 조짐 쪽보다 몸의 치수 쪽으로 다룬다. 같은 항목은 「몸길이는 2∼5㎜ 정도인 것에서부터 2∼3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적었다. 큰 지렁이도 이 짐승의 폭 안에 있다는 뜻이다. 옛 기록 쪽에도 큰 것이 올라 있다. 같은 항목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고려의 궁성에 길이 70척 되는 지렁이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끌어왔고, 큰 구렁이가 마루 밑의 큰 지렁이가 내보낸 기운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두 이야기에서 큰 몸은 센 쪽으로 쓰였다. 유난히 컸던 밤은 앞 칸의 셈이 한 번 더 커진 정도로 읽어 두면 된다.
빛깔이 하얬던 밤 — 빛깔은 그 항목이 적지 않았다. 사는 데와 한자 이름과 약효까지 실려 있는데 몸 빛깔을 적은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흰 것을 길조로 세울 자리도 흉조로 세울 자리도 전거에 없다는 말이다. 빛깔이 또렷하게 남았다면 그 밤의 장면이 밝았다는 쪽으로 두고, 볼 것은 역시 그 짐승이 젖은 데 있었는지 마른 데 있었는지다.
먹는 장면이었던 밤 — 깨고 나서 가장 불쾌하게 남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짐승을 몸에 들이는 자리를 전거에서 찾으면 나오는 것은 약이다. 앞 칸에서 본 ≪동의보감≫ 대목이 그것이고, 식용으로 적은 문장은 그 항목에 없다. 옛 기록은 이 짐승에게 더럽다는 판정을 붙여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먹는 꿈은 몸에 들이는 동작이니 들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던 밤으로 읽어 두면 넉넉하다. 깨고 나서 메스꺼움이 오래 남는다면 그 대목은 풀이보다 몸쪽 신호이니 그쪽을 챙기면 된다.
내 지렁이 꿈은 어디쯤인가
아래는 흙을 기준으로 갈라 두었다. 간밤에 그 짐승이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만 고르면 된다.
흙 속에 있던 밤
· 흙을 파다가 나온 꿈 — 미뤄 둔 일에서 결과가 먼저 올라온다는 길조로 본다.
· 흙 속에서 꿈틀대는 것을 본 꿈 —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다. 서두를 대목이 아니다.
· 흙 속으로 들어가 버린 꿈 — 지금은 안 보여도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는다.
· 땅이 지렁이로 가득했던 꿈 — 셈이 크게 붙는 그림이라 재물 길몽에 든다.
흙 위로 나와 있던 밤
· 마른 길바닥에 나와 있던 꿈 — 제자리를 벗어난 것이 하나 있다는 조짐이다. 사람보다 일정 쪽을 본다.
· 마당이나 방 안에 들어와 있던 꿈 — 바깥일이 안쪽까지 넘어왔다는 뜻으로 잡는다.
· 밟혀 꿈틀대던 꿈 — 참고 있던 편에서 말이 나올 참이라는 신호로 본다.
· 말라 있던 꿈 — 기운이 빠진 데가 하나 있다는 의미다. 그 한 군데만 챙기면 된다.
물기가 있던 곳
· 비 온 뒤 젖은 땅에 있던 꿈 — 때가 맞았다는 길조다. 이 갈래가 가장 순하다.
· 물속이나 웅덩이에 있던 꿈 — 감정 쪽 일이 섞여 있다는 표시로 본다.
· 진흙에 섞여 있던 꿈 — 뒤엉킨 일이 곧 갈린다는 의미로 읽는다.
사람 손이 닿은 뒤
· 손으로 집어 든 꿈 — 내가 고를 수 있는 데까지 왔다는 길조다.
· 통이나 그릇에 담아 둔 꿈 — 쓸 데를 정해 두었다는 뜻이라 걱정을 얹을 데가 적다.
열세 칸 가운데 딱 맞는 것이 없어도 괜찮다. 이 꿈이 흙 속이었는지 밖이었는지만 정해 두면 방향은 잡힌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종이를 한 장 꺼낼 일이 있다. 지난 한 주에 한 일 가운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것 세 가지를 세로로 늘어놓아 보는 것이다. 잘한 일만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티가 안 나서 셈에서 빠져 있던 것을 줄지어 세워 보는 정도다. 세로로 늘어놓고 나면 그것들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짐승의 사는 자리는 처음부터 흙 속이었다. 밖에 나와 있는 편이 예외였고, 안에 있는 동안에도 이름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요즘 한 일이 남 눈에 안 띄었다면 그것도 같은 데 놓아 두면 된다.
30초로 추리면
✅ 전해오는 해몽에서 이 짐승은 재물·태몽 쪽에 걸려 있다
✅ 흙 속에 있던 밤은 대체로 순한 길몽으로 읽는다
✅ 사전에 실린 옛 이름에는 용(龍) 자가 둘 들어 있다
⚠️ 밖으로 나와 마른 데 있던 밤은 제자리를 벗어난 것이 있다는 표시로 본다
⚠️ 몸이 실제로 걱정되는 경우라면 해몽보다 진료가 먼저다
자주 묻는 것들
같은 지렁이 꿈이 며칠째 이어집니다
되풀이되는 밤은 장면보다 요즘 사정 쪽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그림이 사흘 넘게 왔다면 흙 속이었는지 밖이었는지를 날마다 견줘 보십시오. 놓인 데가 바뀌고 있다면 그 변화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렁이가 아니라 다른 벌레였는데 이 풀이를 대도 되나요
같은 결로 읽히는 대목이 있고 갈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갈래는 전해오는 풀이가 짧은 편이라, 흙이라는 기준 하나를 대신 건네 드립니다. 땅속에 살던 것이면 위 갈래를 그대로 대 보시고, 날거나 집 안을 돌아다니던 것이면 벌레 꿈 풀이 쪽이 더 촘촘합니다.
태몽인지 궁금합니다
전해오는 갈래에는 태몽으로 잡는 대목이 있습니다. 다만 전해오는 결을 따르면 태몽을 가른 것은 짐승의 종류보다 그 꿈을 꾼 사람의 형편이었습니다. 지금 그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시라면 태몽 구별 쪽을 함께 대 보시면 됩니다.
이 밤에 흙에서 올라온 것이 지렁이가 아니었다면 대 볼 데가 따로 있다. 물가에 있던 짐승이었다면 개구리 꿈 쪽이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까지 갔다면 용 꿈 쪽이다. 젖은 땅이 먼저 기억에 남았다면 비 오는 꿈도 같이 펴 보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