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 꿈 해몽, 조상 꿈과 같은 줄에 세워도 될까
죽은 남편 꿈을 꾸고 깬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다섯 글자를 검색창에 넣어 보는 일이다. 묻고 싶은 말은 대개 하나다. 이게 나쁜 꿈인가. 먼저 답부터 적으면, 전통 해몽은 세상을 떠난 남편이 꿈에 보이는 일을 흉몽으로 세우지 않았다. 갈리는 데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꿈에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이고, 울고 깼는지 가볍게 깼는지도 같이 본다. 그런데 이 꿈을 조상 꿈 묶음에 그대로 넣어 푸는 글이 많고, 그 묶음에는 처음부터 빠져 있던 줄이 하나 있다.
목차
죽은 남편 꿈을 흉몽으로 세우지 않은 까닭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에서 떠난 사람이 꿈에 보이는 일은 해를 끼치는 신호가 아니었다. 전할 말이 남아서 들렀다고 읽는 시각이 길게 이어졌고,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꿈도 흉하게 세우지 않았다. 무서움은 꿈의 내용보다 깨고 난 뒤의 적막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말이 이 사별을 담은 낱말부터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미망인(未亡人)을 「남편을 여읜 여자」로 풀고, 그 말이 ≪춘추좌씨전≫의 장공편에 나온다고 덧붙인다.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는 고전에서 끌어온 한자 이름이 붙어 있다. 반대쪽인 홀아비는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는 남자」라는 우리말 한 낱말로 끝난다. 사전은 이 기울기를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한쪽에만 유래를 적어 둘 만큼 긴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사별이 오래도록 여자에게 붙는 신분처럼 다루어졌다고 읽을 수는 있다. 여기까지는 사전이 적은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놓고 해 보는 짐작이다.
조심을 적어야 한다면 꿈의 내용이 아니라 깨고 난 뒤의 며칠이다. 하루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는 며칠은 이 꿈을 꾼 사람에게 흔한 경과다. 다만 그 며칠이 자꾸 길어지면서 잠과 끼니가 같이 흔들린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한 번 말해 두는 편이 낫다. 꿈이 흉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지치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 꿈을 요즘 연구는 어떻게 세었나
떠난 사람이 나오는 꿈을 세어 본 조사가 있다. Domhoff, 『Finding Meaning in Dreams』, 1996이 정리한 Barrett의 1992년 조사로는, 이런 꿈은 전체 꿈 가운데 2% 정도로 드물게 적혔고 내용은 네 묶음으로 갈렸다.
가장 많았던 묶음은 떠난 사람이 살아 돌아와 꿈꾼 사람이 놀라는 꿈(39%)이었고, 다음이 작별이나 안심을 건네는 꿈(29%), 당부를 남기는 꿈(23%), 죽음 자체를 이야기하는 꿈(18%)이었다. 조사는 살아 돌아오는 꿈이 이른 시기에 몰리고, 작별을 건네는 꿈이 그보다 뒤에 오는 경향을 함께 적었다.
이 조사는 미국 대학생들의 꿈 일기를 센 것이고, 배우자를 여읜 사람만 따로 모아 센 조사가 아니다. 그러니 내 꿈이 몇 번째 묶음인지 맞혀 보는 자료로 쓸 것이 아니라, 꿈의 결이 시간에 따라 바뀌어 간다는 한 줄만 곁에 두면 된다.

상복의 줄과 무덤의 줄: 제도는 배우자를 어디에 두었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오복 항목은 이 제도를 「초상을 당했을 때 망자(亡者)와의 혈통관계의 원근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되는 유교의 상복제도」라고 적는다. 참최·자최·대공·소공·시마 다섯이고, 기간은 3년에서 3개월까지 내려간다. 줄을 세운 잣대가 혈통의 멀고 가까움이라는 말이 정의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 다섯 가운데 가장 무거운 참최 3년에 「아내가 남편의 상을 당했을 때」가 들어간다. 아버지 상과 같은 칸이다. 거꾸로 남편이 아내의 상에 입는 복은 1년으로 끝난다고 적혀 있다. 이 대목은 사전 안에서도 표기가 한 가지로 정리돼 있지 않아서, 여기서는 두 표기가 함께 가리키는 1년까지만 적는다.
혈통으로 줄을 세웠으니 배우자는 애초에 그 줄의 어느 칸도 아니다. 그런데 복의 무게만은 가장 위에 올려 둔 것이다. 떠난 사람이 꿈에 나오는 일을 통째로 묶은 읽기는 죽은 사람 꿈에 모아 두었는데, 거기서 중심에 서는 가족은 부모와 조부모다. 배우자는 그 묶음에 들어가지 않고도 복은 가장 무거운, 조금 특이한 자리에 놓여 있다.
무덤에서는 그 특이함이 반대 방향으로 뚜렷해진다. 같은 사전의 합장 항목은 합장을 「한 개의 봉분 속에 하나 이상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으로 풀고, 단분인지 합장인지 묘비로 가린다고 적으면서 그 까닭을 한 줄로 밝힌다. 합장은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덤 앞에서 보아 남편은 왼쪽, 아내는 오른쪽이 원칙이고 묘비에 새긴 이름의 좌우는 그 반대다. 첩은 합장하지 않았다. 고고학 자료로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제도가 배우자를 적어 둔 두 자리
복의 무게: 혈통으로 가른 다섯 등급 안에 배우자의 칸은 없는데, 아내가 입는 복은 아버지 상과 같은 참최 3년으로 적혀 있다.
무덤: 한 봉분을 함께 쓰는 합장은 부부 사이에만 있었다. 위로 모시는 계보에는 올리지 않고, 나란히 눕는 데에 두었다.
위 두 대목은 사전에 실린 제도이고, 사전은 이 제도로 꿈을 어떻게 읽으라고 적지 않았다. 그 둘을 꿈으로 돌려 세운 쪽은 이 글이다. 돌려 세우고 보면 이렇게 읽힌다. 배우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보에 놓인 적이 없고 옆에서 한 봉분을 같이 쓰는 관계였으니, 그가 나온 꿈도 위에서 내려온 전언보다 옆에서 건너온 말로 읽는다.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은 말이고, 받들어야 하는 분부도 아니다. 그래서 이 꿈에는 조상 꿈에 흔히 붙는 「무엇을 잘못했나」라는 물음이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헤어진 뒤에 살아 있는 사람이 나온 꿈은 또 결이 달라서 전남편 꿈에서 따로 다룬다.
죽은 남편 꿈, 장면별로 갈리는 데
아래는 자기 꿈을 대 보는 칸이다. 두 칸이 겹쳐 떠오르는 날도 있으니 하나만 고르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가 서 있던 모습. 웃고 있었다면 전통 풀이에서 가장 가볍게 받는 그림이다. 울고 있었거나 아픈 얼굴이었다면 꿈꾼 사람에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걱정이 남아 있다고 읽고, 등을 보이고 있었다면 못 나눈 말보다 지나간 시간의 길이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가 꿈 안에서 한 일. 밥을 먹고 있었다면 전통 풀이가 꾸준히 길하게 받아 온 대목이다. 무언가를 건네줬다면 그 물건보다 받는 손이 떨렸는지를 먼저 떠올려 보고, 집안을 둘러보고 있었다면 남은 살림을 챙기라는 신호로 읽어 온 시각이 있다. 나를 못 보는 듯했다면 섭섭한 꿈이 아니라 꿈꾼 사람의 하루가 바빠졌다는 표시로 받는다.
꿈이 벌어진 배경. 살던 집이었다면 가장 흔한 배경이고 따로 흉하게 세우지 않는다. 처음 보는 집이었다면 그가 아니라 꿈꾼 사람의 다음 자리가 바뀌는 때로 읽고, 문간이나 마당이었다면 들어오던 참인지 나가던 참인지를 떠올려 보면 결이 갈린다. 무덤이나 산이 함께 나왔다면 벌초 꿈 읽기를 같이 보면 된다.
눈을 뜬 뒤의 내 상태. 울고 깼다면 꿈의 길흉보다 그날 몸을 덜 쓰는 편이 낫다. 마음이 가벼웠다면 전통 풀이가 좋은 신호로 받아 온 결이고, 같은 꿈을 또 꿨다면 말미의 물음에서 따로 적는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꿈은 애도의 시기마다 세기가 달라진다.
죽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꿈
문을 열고 들어와 평소처럼 앉는 꿈이다. 전통 풀이에서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돌아올 것이 돌아오는 그림으로 읽어 왔고, 재물이나 소식으로 받기도 했다. 돌아온 것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지낸 시간이라고 받으면 이 꿈은 거의 흉이 없다.
죽은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꿈
얼굴은 또렷한데 끝까지 말이 없어서 더 찜찜한 꿈이다. 전할 말을 못 들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 없는 꿈을 나쁜 신호로 적어 둔 전승은 두텁지 않다. 위 조사가 적은 묶음으로 보면 말이 오가는 꿈은 오히려 뒤에 오는 묶음이니, 아직 그 차례가 아닐 수도 있다.
죽은 남편이 함께 가자고 하는 꿈
깨고 나서 제일 무섭게 남는 꿈이고, 걱정될 만하다. 다만 이 꿈을 데려간다는 예고로 세울 근거는 전해오는 풀이 쪽에도 두텁지 않다. 혼자 지고 있는 일이 무거울 때 같이 가자는 말로 바뀌어 나온 꿈으로 읽는 시각이 있고, 그 말은 데려가겠다는 예고가 아니라 거드는 손이 아쉽다는 뜻으로 받는다. 꿈에서 따라가지 않았는지 되짚을 필요도 없다.
죽은 남편이 젊은 모습으로 나오는 꿈
아프기 전의 얼굴, 혼인하던 무렵의 얼굴로 나오는 꿈이다. 전통 풀이에서 거리낄 데가 없고, 병을 앓던 끝을 본 사람에게는 그 기억을 덮어 주는 꿈으로도 받았다. 이 꿈을 꾼 날은 그가 아니라 그때의 자기 얼굴이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죽은 남편 꿈을 꾼 오늘, 해 둘 한 가지
풀이를 찾다가 배우자 항목이 좀처럼 안 보여 허탕을 쳤다면, 꿈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줄을 세운 제도가 혈통만 셌고, 해몽 글도 그 줄을 따라 부모와 조부모를 중심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비어 있던 칸을 꿈꾼 사람이 메울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해 둘 한 가지는 해몽이 아니라 이름이다. 하루 가운데 아무 때나 그 이름을 입으로 한 번 불러 보면 된다. 불러 본 일은 기록으로 남지 않고, 다음 꿈을 정하지도 않는다. 꿈을 기억해 두고 싶다면 장면 하나만 짧게 남겨 두는 정도로 족하다.
해몽을 길게 붙일수록 그 밤은 오히려 멀어진다. 오늘은 오늘 할 일 한 가지를 하고, 꿈은 꾼 대로 두면 된다.
죽은 남편 꿈 30초 정리
1. 전통 해몽은 이 꿈을 흉몽으로 세우지 않는다. 갈리는 데는 꿈에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다.
2. 상복 제도는 혈통으로 줄을 세워 배우자의 칸을 두지 않았고, 아내가 입는 복만 아버지 상과 같은 무게로 적었다.
3. 합장은 부부끼리만. 위로 모시는 계보 밖이고 나란히 눕는 관계였다. 그래서 분부보다 말에 가까운 꿈이다.
4. 조심할 데는 꿈이 아니라 그다음 며칠이다. 길어지면 사람을 만나 말해 두면 좋다.

죽은 남편 꿈 해몽, 아직 남은 물음 넷
이 꿈을 꾸면 제사를 다시 지내야 하나요?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된다. 꿈을 제사의 재촉으로 읽는 시각은 조상 꿈 풀이에서 자라난 것이고, 배우자는 그 계보에 놓인 적이 없다. 마음이 쓰인다면 상을 다시 차리는 대신 평소 하던 일 한 가지를 그 사람을 생각하며 해 두는 정도가 맞다.
자꾸 같은 꿈을 꾸면 못 떠난 것이라는 말이 맞나요?
전통 풀이에도 그런 말이 돌지만 단정할 근거는 두텁지 않다. 반복되는 꿈은 떠난 사람의 사정보다 꿈꾼 사람의 하루가 아직 그 일을 세는 중이라는 표시로 읽는 편이 낫다. 다만 반복이 잠을 망가뜨릴 정도면 그때는 해몽 밖의 일이다.
재혼을 생각하는 중에 꾸면 반대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으로 읽을 자리가 아니다. 옛 제도가 후처의 묘를 따로 적어 둘 만큼 다시 맺는 일은 있어 온 일이고, 해몽은 더더구나 사람의 다음 선택을 심판하지 않는다. 결정은 깨어 있는 시간에 내린다.
전남편 꿈과 같게 보나요?
갈라 본다. 헤어진 사이에는 연락이라는 선택이 남아 있고 사별한 사이에는 그 선택이 없어서, 꿈을 깨고 난 뒤의 물음 자체가 다르다. 죽은 남편 꿈 해몽에서 먼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이 아니라 꿈꾼 사람에게 남은 기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