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꿈 해몽: 간밤 그 새가 콩을 쪼고 있었다면
곡식을 거두는 철이라 걷어 낸 밭에 낟알을 쪼러 새가 내려앉는 것도 이맘때다. 새벽에 비둘기 꿈을 꾸고 잠이 깬 분이라면, 이 꿈자리는 흉몽 쪽에 놓고 볼 것이 아니다. 다만 갈리는 곳이 하나 있다. 그 갈림은 새가 얼마나 높이 날았는지보다 그 입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에 붙는다. 옛말이 이 새를 앉혀 둔 데가 하늘이 아니라 밭이었기 때문이다.

목차
비둘기 꿈 해몽, 옛말은 이 새를 콩밭에 앉혀 두었다
전해 오는 말에 이런 것이 있다. 비둘기는 몸이 밖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딴 데 정신이 팔린 사람을 두고 쓰는 말이라 결이 곱지는 않다. 그래도 옛사람이 이 새에서 떠올린 것이 곡식이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사전도 결이 비슷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비둘기」 항목은 우리 텃새로 낭비둘기·흑비둘기·염주비둘기·멧비둘기 넷을 들고, 가장 흔한 멧비둘기 대목에 이 문장을 두었다. 「새끼는 어미새가 콩 및 기타 식물질을 비둘기젖 형태로 토해 내어 키운다.」
여기가 이 해몽의 축이다. 어미가 먹은 콩은 제 배로만 가지 않는다. 몸을 한 번 거쳐 비둘기젖이 되고 그렇게 새끼에게 간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던 그 마음에는 먹여야 할 것이 딸려 있었다. 이 글이 사전에서 가져오는 대목은 그 하나다. 비둘기를 평화의 표시로 그리는 그림은 다른 데서 건너왔고, 그 내력까지 맡지는 않는다.
이 꿈자리가 오늘의 나에게 물어 오는 것
아래는 옛 기록이 아니라 이 글이 요즘 결로 풀어 본 심리 쪽 해석이다. 새벽에 이런 꿈을 꾸면 길몽인지 흉몽인지부터 알고 싶어지고, 마음이 급할 때 사람은 밖에서 올 복을 먼저 센다. 그런데 이 새가 붙들고 있는 장면은 제 몸을 지나보내서 내주는 쪽이다.
요 며칠 마음이 무거우셨다면, 그 시간에도 무언가는 어디론가 계속 나가고 있었고 자국만 눈에 안 띄었을 수 있다. 그러니 길몽인지부터 가르려 애쓰지 않으셔도 된다. 요즘 하루에서 그렇게 나가고 있던 것을 한 가지만 여투어 두시면, 이 꿈은 해 줄 말을 이미 해 준 것이다.

비둘기 꿈, 간밤 장면을 칸에 놓아 보면
아래 칸은 옛 기록의 목록이 아니라 위에서 본 기준 하나로 이 글이 갈라 둔 해몽이다. 같은 새 꿈 갈래와 결이 나뉘는 곳도 여기다. 걸리는 줄에서 멈춰 읽으시면 된다.
그 새가 먹고 있었다면. 콩이나 곡식을 쪼고 있었다면 들어올 몫이 이미 어딘가 놓여 있다고 새긴다. 사람이 뿌려 준 모이였다면 남의 손이 함께 얹힌 일이라는 징조로 읽는다. 아무것도 안 먹고 앉아만 있었다면 지금은 쉬는 때로 본다. 무언가를 물고 가고 있었다면 그 일이 내 손을 떠나는 중이다.
새끼나 둥지가 보였다면.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고 있었다면 요즘 내가 대고 있는 곳을 묻는 꿈자리다. 알이나 어린 새가 있었다면 결과를 보기엔 이른 일이 하나 있다는 뜻이다. 어린 비둘기였다면 태몽 쪽으로 묻는 분이 많은데, 그 갈래는 아래에서 짚는다.
그 새가 있던 데로 갈린다면. 밭이나 들이었다면 옛말 그대로라 해몽이 가장 순하다. 집 처마나 난간이었다면 바깥일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대목이다. 바위나 벼랑이었다면 사전이 낭비둘기의 거처로 적어 둔 결이라 낯선 데서 버티는 운으로 본다.
간밤 그 비둘기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었다면 조금 서늘하게 읽히실 수 있다. 다만 이 글이 사전에서 빌려 온 대목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였는지다. 혼자 있던 장면이 걸리시면 새의 입부터 보시면 된다.
흰 비둘기 꿈
길몽으로 읽히는 갈래다. 다만 사전이 텃새로 든 넷은 빛깔로 가른 이름이 아니고, 흰 빛깔은 사람이 길러 오면서 갈라진 갈래다. 이 갈래의 길몽 풀이는 옛 기록보다 빛깔이 주는 인상에 기대어 전해 온 것으로 보시는 편이 정직하다. 그래도 흉몽이 되지는 않는다.
비둘기 떼 꿈
여럿이 내려앉거나 날아오르는 꿈은 사람 수가 늘어나는 일로 새긴다. 좋은 쪽이면 손이 늘고 부담스러운 쪽이면 챙길 입이 는다. 어느 쪽인지는 그 떼를 보던 내 마음이 알려 준다. 참새 꿈이 곡식에 달라붙는 갈래라면 이쪽은 머무는 갈래다.
비둘기가 손이나 어깨에 앉는 꿈
사람에게 다가온 꿈자리라 대체로 반가운 소식으로 읽는다. 부탁이 들어오는 길몽으로 보는 풀이도 있다. 놀라서 뿌리쳤다면 받을 준비가 아직 안 됐다는 징조인데, 거절이 흉조라는 뜻은 아니다.
요 며칠 손을 놓고 있던 것 하나만 오늘 다시 깨워 두시면 된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 필요는 없고 절반쯤 해 둔 것이면 더 좋다. 오늘 안에 끝내지 못해도 괜찮다. 달라지는 것은 그것이 잠들어 있던 쪽이 아니게 된다는 하나다.
사전은 이 새의 번식에 숫자를 하나 남겨 두었다. 한배에 둘. 왜 둘인지는 이 글이 정할 몫이 아니지만, 제 몸을 거쳐 먹여 키우는 새라는 대목 곁에 두면 읽히는 구석이 있다. 많이 벌여 놓는 새는 아니었다.

- 갈리는 곳은 그 새의 입이다. 간밤 무엇을 쪼고 있었는지부터 짚는다.
- 사전이 붙여 둔 대목은 어미가 먹은 콩이 제 몸을 거쳐 새끼에게 간다는 것.
- 평화의 징조는 건너온 그림이고, 이 해몽은 먹고 먹이는 일을 먼저 본다.
비둘기 꿈 해몽, 마지막에 묻게 되는 셋
비둘기 태몽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맞나
새가 나오는 태몽 갈래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비둘기도 그 안에 든다. 다만 태몽인지는 새의 종류보다 꿈을 꾼 사람의 사정이 정한다. 까치 꿈처럼 소식 쪽으로 굳은 새와는 결이 다르다.
비둘기가 죽어 있거나 다쳐 있었다면
놀라실 만한 꿈자리지만 흉몽으로 확정할 자리는 아니다. 전해오는 풀이에는 하던 일 하나가 마무리로 간다고 새기는 갈래가 있다. 겁이 남으셨다면 어제 낮을 되감아 보시는 편이 빠르다.
같은 꿈을 여러 밤 이어서 꾼다면
되풀이되는 꿈자리는 풀이가 바뀌는 자리가 아니다. 세기가 달라지는 것으로 본다. 다만 잠이 축나고 낮이 무거울 정도로 이어진다면, 해몽보다 쉬는 일을 먼저 챙기시거나 가까운 분께 이야기해 보시는 편이 낫다.
간밤 장면이 흐릿하면 흐릿한 대로 놓아 두셔도 된다. 그 입에 무엇이 있었는지 한 컷만 남아 있으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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