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꿈이 다툼으로 읽히긴 해도 옛 기록에 크게 남은 쪽은 구경꾼이었다
『동국세시기』의 한 대목을 사전이 이렇게 옮겨 두었다. 금산 풍속으로 해마다 단옷날에는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직지사에 모여 씨름을 하여 승부를 가리는데, 이 구경을 하러 모이는 사람들은 수천인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짧은 기록에서 숫자가 붙은 쪽은 맞붙은 사람이 아니다. 둘러서서 본 사람 쪽이다.
간밤에 씨름 꿈을 꾸고 마음이 찜찜해서 들어오셨다면 방향부터 먼저 드린다. 씨름 꿈은 흉몽 칸으로 밀어 둘 꿈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꿈의 결을 정하는 것도 이겼나 졌나가 아니다. 옛 그림과 옛 문헌이 이 겨루기에 크게 남겨 둔 대목을 보고 나면, 간밤 장면에서 무엇을 먼저 떠올릴지가 달라진다.

목차
씨름 꿈 해몽의 갈림은 판 바깥에 있었다
씨름 꿈 해몽에서 먼저 볼 것은 승패가 아니라 그 판에 누가 둘러서 있었느냐다. 이 한 줄이 답이다.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에서는 이 꿈을 다툴 일이나 겨룰 일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로 읽는 시각이 있다. 그 읽기를 지울 일은 아니다. 다만 그 풀이만 쥐고 있으면 간밤 꿈자리의 절반이 버려진다. 꿈에서 또렷하게 남는 것은 대개 내가 이겼는지가 아니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다. 사람들 한가운데였는지, 아무도 없는 데서 둘만 마주 섰는지, 나는 붙었는지 보고만 있었는지. 해몽은 거기서 갈린다.
옛 그림에도 심판이 서 있었고 문헌은 모인 사람 수를 적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씨름」 항목은 이 겨루기를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로 정의한다. 정의의 끝말이 싸움이 아니고 놀이라는 대목을 눈에 담아 두면 좋겠다. 한자 이름도 각저(角抵)·각력(角力)·상박(相撲)으로 남았다.
- 사전이 판이 섰다고 적은 절기는 단오절·상원·삼짇날·초파일·백중·한가위·중양절로 일곱이다.
- 가장 오래된 장면은 4세기경 고구려 각저총 벽화다. 사전은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과 심판하는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라고 적었다. 그 그림에도 사람이 둘만 있지 않았다.
- 상은 고려 때는 베였고 조선 때는 황소 한 마리였다. 짐승이 걸린 판이었으니 그 소가 나오는 꿈과도 이어진다.
이 항목에서 눈에 가장 오래 걸리는 문장은 따로 있다. 「위로는 임금을 비롯하여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씨름의 구경꾼은 국민 모두라고 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판 하나를 굴리는 데 걸립으로 비용을 걷었고, 사흘째 오후에야 끝까지 남은 장사끼리 결승이 붙었다고 이어 적었다. 판 하나가 서는 데 걷은 돈과 사흘이 들었다는 뜻이다. 명절에만 서던 자리를 다룬 널뛰기 꿈이나 그네 꿈과 이 편이 이어지는 까닭도 거기 있다.
한 대목은 정직하게 밝혀 둔다. 사전은 끝까지 남은 사람의 이름과 그가 받은 것을 적어 두었고, 먼저 물러난 사람들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적히지 않았다고 그 사람들이 없었던 것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수천 명이 모였다는 그 기록이 답을 하고 있다. 덧붙여 이 항목 어디에도 씨름 꿈의 해몽은 한 줄도 없다. 꿈 쪽 풀이는 민간의 전승에 있고, 사전 쪽에서 이 글이 가져온 몫은 판이 어떻게 섰는지까지로 한정된다.
씨름 꿈, 간밤 그 판이 어떻게 서 있었나
아래 칸은 이 글이 위 기록을 따라 갈라 둔 해몽 칸이다. 옛 풀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뜻이 아니니 마음 가는 칸만 읽으셔도 된다.
둘레에 누가 있었나
-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가장 순한 결이다. 내 일이 나 혼자 감당할 일로 남지 않는다고 읽는다.
- 보는 사람이 하나쯤 서 있었다. 각저총 그림의 심판처럼 판을 봐 주는 몫이 있다는 신호로 본다.
- 아무도 없이 둘만 있었다. 이 대목이 서늘하게 남는 꿈자리다. 아래에서 따로 적는다.
- 나는 둘레에서 보고만 있었다. 내 힘을 쓸 차례가 아직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참이었나
- 샅바를 잡기 전이었다. 아직 아무 힘도 들지 않은 참이고, 준비만 남았다는 신호로 본다.
- 잡고 버티는 중이었다. 요즘 가장 힘이 드는 일이 한창이라는 뜻이고, 버티는 중이라는 것은 아직 안 넘어갔다는 말이다.
- 내가 넘어뜨렸다. 옛 어른들이 좋게 본 쪽이고, 무엇을 넘겼는지 떠올려 보시면 결이 더 좁혀진다.
- 내가 넘어졌다. 흉몽으로 몰 자리가 아니다. 넘어진 사람은 그다음 판을 다시 봤다.
내 자리는 어디였나
- 내가 직접 붙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이름이 내 앞으로 걸려 있다는 신호다.
- 아는 사람이 붙는 것을 봤다. 가까운 이의 일이 먼저 걸려 있다는 신호다.
- 말리려고 들어갔다. 조율하는 몫이 와 있다는 뜻이다.
- 나가라고 등을 밀렸다. 내가 정해서 오른 차례는 아니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미루던 일이 떠오른다면 그쪽이다.
판 밖에 무엇이 있었나
- 상으로 짐승이나 물건이 걸려 있었다. 걸린 것이 뚜렷할수록 기대하는 결과가 또렷하다는 뜻이다.
- 판이 이미 걷히고 있었다. 늦었다는 신호로 읽지 않는다. 그 판은 사흘에 걸쳐 섰다.
- 바닥이 유난히 눈에 남았다. 붙을 자리를 먼저 고르는 중이라는 뜻이다.
- 작고 가벼운 판이었다. 아이들이 붙던 작은 판이었다면 연습 자리로 읽는다.
둘만 마주 서 있던 꿈자리를 따로 적는다. 그 꿈자리가 오래 남는 것은 봐 주는 사람 없이 혼자 감당한 느낌이 묻어 오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끌고 계시다면 그 감각이 맞다. 그 일이 나쁘게 끝난다는 예고로 읽을 근거는 없다. 둘레가 비어 보였을 뿐이다.

씨름 꿈이 사람들 앞이었다면 달라지는 것
둘레를 굳이 먼저 묻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람이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은 현대 심리학에서도 오래 다뤄진 주제다.
사회적 촉진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설명이 있다. 몸에 익은 일은 보는 사람이 있을 때 더 잘되고, 낯선 일은 오히려 흐트러진다는 설명이다(Zajonc, 「Social facilitation」, 『Science』 149권, 1965). 다만 굳은 법칙이 된 것은 아니다. 뒤에 나온 대규모 재검토는 효과의 크기가 작고 조건에 따라 들쭉날쭉했다고 지적했다(Bond & Titus, 「Social facilitation: a meta-analysis of 241 studies」, 『Psychological Bulletin』 94권, 1983). 남는 것은 이 정도다. 보는 사람의 있고 없음은 내 마음이 이미 아는 조건이고, 꿈은 그것을 장면으로 돌려준다.
전해온 쪽과 요즘 심리 쪽
전해온 쪽. 맞붙는 장면이라 앞으로 겨룰 일을 가리키는 표로 읽어 왔다. 판은 명절에만 섰고 상은 끝까지 남은 사람 몫이었다.
요즘 심리 쪽. 둘레의 있고 없음이 사람을 흔든다는 논의가 있고, 그 흔들림이 크지는 않다는 반론도 함께 있다.
여기서 마음을 조금 놓아 드리고 싶다. 수천 명이 모였다는 그 기록에서 이름이 남은 사람은 마지막까지 남은 한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먼저 물러났거나 둘러서서 봤다.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면 그 판의 대부분은 이기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금 어떤 일에서 밀리는 느낌이 드신다면, 그것이 판 밖으로 밀려났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긴 한 사람의 이름만 눈에 담고 있던 마음을, 같은 판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 쪽으로 한 번 둘러보시면 그게 훨씬 넓은 자리다.
이 겨루기는 혼자서는 애초에 서지 않았다. 간밤 꿈에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면 그 사람도 판을 세운 쪽이다.
씨름 꿈 해몽, 한가위 판을 떠올리며 장면마다 갈라 본다
같은 사전의 「추석」 항목은 이 날을 「음력 8월 15일로 가배·가위·한가위·중추절 등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명절」로 적는다. 그 날 마당에서 벌어진 것들 가운데 씨름이 들어 있는데, 적어 둔 방식이 걸린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씨름을 한다」고 했다. 한 마당 안에서도 판이 둘로 갈려 있었다는 말이다. 같은 항목은 얻은 음식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의 뜻을 보인다고 적었다. 명절 상에 오르던 송편이 나오는 꿈도 같은 자리다.
씨름하는 꿈
내가 직접 붙은 꿈자리다. 전통적으로는 힘을 써야 할 일이 앞에 있다고 읽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 붙기 전이었는지 맞잡고 있었는지에 따라 내 일이 어느 참에 와 있는지가 드러난다.
씨름에서 이기는 꿈
길몽 쪽으로 읽어 온 꿈이다. 끝까지 남은 사람에게 장사라는 이름과 상이 돌아갔으니 좋게 본 까닭은 분명하다. 다만 사전이 적은 판은 한 번 붙어 끝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세 사람을 물리쳐야 다음 자리에 올랐다. 단번에 끝나는 결과보다 몇 차례에 걸쳐 쌓이는 쪽으로 기대를 잡아 두시는 편이 맞다. 길몽으로 본 풀이가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씨름에서 지는 꿈
가장 마음이 내려앉는 꿈자리다. 전해오는 풀이에서도 이 장면을 곧바로 실패의 예고로 묶지는 않았다. 넘어진 자리에서 무엇이 눈에 남았는지 떠올려 보시면 좋겠다. 상대의 얼굴이 남았다면 사람 문제이고, 바닥이 남았다면 자리나 조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씨름 구경하는 꿈
이 편이 특히 아껴 두고 싶은 장면이다. 옛 기록에서 숫자가 붙은 쪽이 이 자리였다. 구경하는 꿈을 「내 차례가 없다」로 읽을 근거는 자료에 없다. 오히려 판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이 장면을 흉몽 쪽으로 옮길 까닭은 없다.
씨름 태몽
맞붙는 장면을 태몽으로 여기는 시각도 전해온다. 힘과 기운으로 읽어 온 결이다. 다만 태몽은 성별을 점치는 표가 아니고 새 식구를 맞는 마음이 장면으로 온 것이라고 보는 편이 이 블로그의 시각이다. 몸이나 마음이 힘든 시기에 이런 꿈이 잦아지기도 하니, 걱정이 오래 남으면 가까운 이나 전문가와 한 번 나누어 보셔도 좋다. 더 궁금하시면 아기가 나오는 꿈도 함께 보시면 된다.

오늘 한 사람에게만 여쭤 둘 것
씨름 꿈을 꾸고 나면 대개 붙어야 할 일 하나가 함께 떠오른다. 그 일을 오늘 안에 끝내려 드시지 않아도 된다. 사흘에 걸쳐 섰다는 그 판처럼, 오늘은 그 일을 아는 사람 하나에게 한 줄만 여쭤 두시면 된다. 봐 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판은 성격이 달라진다. 여쭤 둔 데는 나 혼자 들고 있던 일이 아니게 된다.
씨름 꿈 해몽, 판이 끝난 뒤에 남는 궁금증
씨름 꿈을 꾸면 정말 다툴 일이 생기나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에 그런 시각이 있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자료가 이 겨루기에 붙여 둔 정의의 끝말은 놀이였다. 다툼의 예고로 굳히지 않고, 힘이 들어갈 일이 앞에 있다는 정도로 두시면 된다.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붙은 꿈이었다면
장소가 오늘의 장소로 바뀌어 나오는 것은 흔하다. 이때는 둘레를 보시면 된다. 사람이 있었는지, 나는 붙었는지 보고 있었는지가 같은 갈림에 걸린다.
명절이 가까운 때에 꾼 꿈은 다르게 봐야 하나
따로 다르게 보는 규칙이 자료에 적혀 있지는 않다. 다만 명절이 가까우면 사람과 얽힌 생각이 늘어난다고 느끼는 분이 많다. 그런 시기라면 이 꿈의 해몽을 사람 관계 쪽으로 놓고 읽어도 무리가 없다.
맞붙은 상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결함은 아니다. 얼굴이 지워진 채 남았다면 지금 감당하는 일 자체가 상대로 서 있었을 수 있다. 떠오르는 장면만으로 읽어도 풀이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