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화장실 꿈 해몽 대표이미지

더러운 화장실 꿈, 옛 셈법은 버리는 자리로 안 봤다

뒷간을 적어 둔 옛 기록은 이 자리를 버리러 가는 데로 다루지 않는다. 더러운 화장실 꿈이 재물 쪽으로 읽혀 온 뿌리가 거기 있다 — 전해오는 해몽은 이 꿈자리를 대체로 길한 쪽에 놓았고, 지저분할수록 더 그렇게 봤다. 찝찝하게 깼더라도 흉몽부터 걱정할 꿈자리는 아니다. 다만 그 ‘재물’이 옛사람에게 무엇이었는지는 짚고 가야 한다. 이 꿈에 걸어도 되는 기대의 크기가 거기서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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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화장실 꿈으로 무엇까지 기대해도 되나

먼저 김빠지는 쪽부터 말해 두겠다. 이 꿈을 꿨다고 당첨 확률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전통 해몽 어디에도 확률을 손봐 주는 길몽 같은 것은 없고, 있다고 적힌 옛 책도 없다. 민간에 전해오는 풀이가 이 꿈자리를 재물로 읽은 것은 맞지만, 그때의 재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목돈이 아니라 쥐고 있다가 나중에 값이 되는 것이었다.

기대를 깎으면 손해 같지만 실은 이쪽이 편하다. 요행에 걸어 둔 기대는 며칠 뒤 실망으로 돌아오고, 그 실망은 애먼 꿈 탓으로 남는다. 반대로 이 꿈을 흉조로 읽을 근거도 옛 해몽에는 거의 없다. 겁낼 흉몽도 아니고, 기대를 몰아 걸 길몽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디쯤이 이 꿈자리의 자리다.

돌담과 초가가 남은 옛 시골 집터
살림과 밭이 한 마당에 있던 옛 집터

더럽다는 인상이 길흉을 대신 정해 버린다

깨고 나서 남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기분이다. 더럽다는 느낌이 강했으면 그 꿈자리는 대개 흉몽으로 저장된다. 실제 해몽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그렇게 된다.

불쾌하게 깨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근거도 있다. 꿈 내용을 항목별로 세어 본 고전 규준에서 보고된 정서 가운데 부정 쪽이 남성 80퍼센트(불안 34·혼란 22·분노 16·슬픔 9), 여성도 80퍼센트(불안 37·혼란 18·분노 13·슬픔 13)였다. 행복은 남녀 모두 20퍼센트였다(Hall & Van de Castle, 『The Content Analysis of Dreams』, 1966). 미국 대학생 표본을 부호화한 결과라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치는 아니고, 좋은 기분으로 깨는 꿈이 다섯에 하나는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 나쁘게 깨는 쪽이 다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간밤에 혼자만 이상한 꿈자리를 겪은 게 아니다.

현대 심리는 이런 장면을 밀쳐 둔 것이 돌아온 자리로 읽는 편이다. 융의 분석심리에서 말하는 그늘 — 평소 보지 않기로 해 둔 부분 — 이 꿈에서는 치우지 않은 자리의 모습으로 오기도 한다. 조심할 것은 이 풀이를 사람 됨됨이의 흠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다. 미뤄 둔 일이 있다는 징조이지, 당신이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판정이 아니다.

더러운 화장실 꿈의 ‘재물’이 원래 가리키던 것

옛 살림에서 뒷간은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모으는 곳이었다. 똥에 아궁이 재를 섞어 쌓아 두었다가 밭으로 냈고, 오줌은 따로 받아 두었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1827)에 적어 둔 것도 오줌 받는 웅덩이를 어떻게 만드느냐, 얼마나 오래 삭혀야 좋으냐였다. 삭히는 시간이 길수록 좋다고 봤다. 그 자리에 쌓인 더러움은 흠이 아니라 다음 농사의 밑천이었던 셈이다.

이름부터 그렇다. 뒷간·측간·정랑으로 불렸고, 절에서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라 했다. 제주에서는 통시라 했는데 뒷간이면서 돼지우리였다. 돼지를 함께 길러 거름과 고기를 얻던 구조다. 돼지 꿈이 재물 길몽의 대표가 된 내력과 한 뿌리에서 만난다.

여기까지 오면 해몽의 셈법이 보인다. 옛사람이 이 꿈을 반긴 것은 더러움이 좋아서가 아니라 더러운 것이 쌓인 자리가 곧 밑천이 쌓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쌀 꿈이나 소금 꿈이 재물로 읽힌 것과 결이 같다. 살림에 값이 되던 것이 꿈에 오면 길조로 셈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더러운 장면이지만, 그 장면을 처음 길하게 읽은 사람들 눈에는 창고에 가까웠다.

밭 가장자리에 쌓아 둔 거름 더미
쌓인 것이 곧 다음 해의 밑천이었다

장면으로 갈라 본 더러운 화장실 꿈

무엇이 더러웠고 그 앞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옛 해몽이 갈렸다. 자기 꿈자리에 가까운 칸을 찾아 읽으면 된다.

그 자리가 어떤 상태였나

오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전통 해몽이 가장 길하게 본 쪽이다. 넘친다는 것은 담을 그릇보다 내용이 많다는 뜻이라, 예전 셈법으로는 감당 못 할 만큼 들어온다는 그림이었다.

막혀서 물이 안 내려갔다. 이건 결이 다르다. 쌓이긴 했는데 흐르지 않는 자리라, 들어올 것이 어디선가 걸려 있다는 신호로 읽었다. 겁줄 이야기는 아니고, 미뤄 둔 절차나 연락 한 건이 없는지 훑어보라는 쪽에 가깝다.

바닥이 온통 젖어 있었다. 물이 함께 나온 꿈은 마음의 상태를 비추는 쪽으로 봤다. 맑은 물이었는지 흐린 물이었는지가 갈림길이다.

냄새가 지독했다. 냄새까지 남는 꿈은 인상이 강해 흉몽으로 기억되기 쉽지만, 옛 해몽은 냄새를 따로 흉하게 세지 않았다. 감각이 선명했다는 것 이상으로 읽지 않아도 된다.

낡은 옛 뒷간이었다. 지금 안 쓰는 자리가 꿈에 나오면 오래 묵은 일 쪽을 가리킨다고 봤다. 최근 일보다 한참 전에 접어 둔 쪽을 떠올려 보면 된다.

칸마다 전부 더러웠다. 고를 데가 없었다는 것은 지금 어느 쪽을 골라도 마음에 안 든다는 상태에 가깝다. 선택 자체보다 고르는 사람의 피로를 먼저 보는 것이 낫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오물이 몸이나 옷에 묻었다. 놀라서 깼겠지만 민간에 전해오는 해몽에서는 묻은 꿈을 오히려 반겼다. 닿았다는 것을 받았다는 뜻으로 셈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빠졌다. 위 칸보다 더 크게 본 풀이가 많다. 몸이 통째로 들어간 꿈은 옛 셈법에서 큰 변화가 붙는 자리로 읽혔다. 놀란 기분과 풀이의 방향이 정반대인 대표적인 예다.

내가 치우고 닦았다. 전승보다 요즘 상황에 대입하기 쉬운 칸이다. 꿈에서 치우는 사람은 대개 현실에서도 정리할 일을 안고 있다. 흉몽이 아니라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그림으로 봐도 된다.

물건을 빠뜨렸다. 아까운 것을 잃는 장면이라 흉몽처럼 남지만, 무엇을 빠뜨렸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갑·반지처럼 값나가는 물건이면 잃음보다 거기 마음이 가 있다는 쪽을 먼저 본다.

아는 사람이 그 안에 있었다. 옛 풀이는 남의 몫과 내 몫을 갈라 셈했다. 그 사람 쪽 일로 보되, 요즘 그 사람이 마음에 걸려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함께 보면 된다.

더럽다고 그냥 돌아 나왔다. 들어가지 못하고 끝난 꿈은 화장실 꿈 전반에서 가장 흔한 마무리다. 여기서는 더러움보다 못 들어간 쪽이 중심이 되니 그 계열로 읽는 편이 맞다.

새벽 마당의 나무문
깬 뒤의 아침이 실은 이 꿈의 본론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한 군데 치우는 것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더러운 화장실 꿈은 전해오는 해몽에서 길한 쪽에 놓인 꿈이고, 그 길함의 정체는 요행이 아니라 쌓아 둔 것이 값이 되던 자리의 기억이다. 갈리는 데는 딱 하나 — 넘쳤느냐 막혔느냐다.

그래서 오늘 권할 것도 점집이나 요행 쪽이 아니다. 미뤄 두고 안 열어 본 자리를 딱 한 군데만 치우면 된다. 싱크대 아래 칸이든, 베란다 구석이든, 몇 달째 안 연 서랍 하나든 상관없다. 십오 분이면 끝나는 크기로 고르는 것이 요령이다.

꿈에서 본 것도 쌓인 자리였고, 오늘 손댈 수 있는 것도 쌓인 자리다. 둘 중 실제로 치울 수 있는 쪽은 뒤엣것이다.

자주 함께 묻는 것들

같은 화장실 꿈을 며칠째 꾸는데?

반복되는 꿈은 전통 해몽에서도 따로 세지 않았다. 같은 장면이 이어지는 것은 대개 낮에 걸려 있는 일이 그대로라는 뜻에 가깝다. 풀이를 다시 찾기보다 그 걸린 일 쪽을 손보는 편이 빠르다.

임신 중에 꿨는데 태몽인가?

더러운 자리에서 무언가를 건져 오거나 품에 안은 장면이면 태몽으로 셈한 경우가 있다. 다만 태몽은 재미로 보는 것이고 실제 확인은 산부인과 몫이다. 꿈으로 성별이나 건강을 점치지는 않는 편이 좋다.

냄새까지 났으면 풀이가 달라지나?

달라지지 않는다. 옛 풀이는 냄새를 따로 길흉 항목으로 두지 않았다. 감각이 선명했던 꿈일수록 오래 남을 뿐이니, 그 선명함을 나쁜 징조로 옮겨 읽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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