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꿈을 꿨다면 옛 무늬부터 보는 편이 낫다
박쥐 꿈을 꾸고 마음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다. 이 짐승을 무섭게 그린 장면은 대체로 바다 건너에서 들어왔다. 우리가 눈에 익힌 그림이 그 계보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이 땅에 남은 기록은 결이 사뭇 다르다. 옛사람은 이 형상을 물건에 새겨 곁에 두었다. 장롱에도 옷에도 떡에도 찍었다. 그래서 이 해몽은 무늬 쪽에서 먼저 시작한다. 다만 간밤 그것이 살아서 날고 있었는지, 무늬로 붙어 있었는지에 따라 읽는 결이 갈린다.
목차
박쥐 꿈, 사전은 무엇을 적고 무엇을 비워 두었나
이 글이 가져온 두 사전 항목 어디에도 「이 짐승을 꿈에 보면 어떻다」는 문장은 없다. 흉하다는 말도, 재물이 들어온다는 말도 없다. 널리 도는 해몽이 옛 기록에서 곧장 나왔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읽을 것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꿈 항목이 비어 있는 대신 이 형상을 어디에 새겼는지가 두껍게 남아 있다. 박쥐는 전통적으로 복(福)을 뜻하는 형상으로 새겨졌다.
복(福)과 소리가 같아서 새긴 무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복문(蝙蝠文)」 항목은 이것을 「박쥐의 형상으로 구성된 금문(錦文) 형식의 문양」이라 정의한다. 「’蝠’은 ‘福’과 동음 동성(同音同聲)인 까닭에 박쥐는 복(福)을 상징한다.」 소리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복을 데려오는 그림이 되었다.
새긴 자리도 적혀 있다. 「의료(衣料)나 가구 장식(家具裝飾), 그리고 식기(食器)·떡살·능화판(菱花板) 등 용기류(容器類)에 시문되었다.」 같은 항목은 『서경(書經)』 홍범편이 꼽은 다섯 복도 함께 적는다. 오래 사는 것, 넉넉한 것, 몸이 편한 것, 덕을 즐겨 닦는 것, 제 명대로 마치는 것이다. 이 짐승의 옛 이름 하나가 복익(福翼), 복을 지닌 날개인 것도 같은 결에서 나왔다.

그러니 간밤 이것이 무늬로 있었다면 그 그림은 겁을 주려고 붙여 둔 것이 아니었다. 흉물이라 배운 것을 복으로 새기던 무늬 쪽으로 눈에 익히기. 물건에 이런 형상을 얹던 손버릇은 베개에 무늬를 놓던 결이나 옷에 무엇을 새겼는지 보는 결과 한자리에서 나온다.
자주 눈에 닿은 것은 왜 순해지는가
현대 심리학에도 비슷한 자리를 짚은 연구가 있다. Zajonc,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Monograph Supplement』 9(2, Pt.2), 1968, 1~27쪽이다. 보고한 실험은 넷이다. 뜻 없는 터키식 낱말을 보여 준 실험, 뜻 모르는 한자를 바라보게만 한 실험, 얼굴 사진을 보여 준 실험, 낱말을 보는 동안 피부의 전기 반응을 잰 실험이다. 앞의 셋에서는 여러 번 본 것일수록 좋게 평가되었고, 넷째에서는 노출이 늘수록 몸의 반응이 잦아들어 일고여덟 번쯤에서 평평해졌다.
범위는 좁혀 두는 편이 정확하다. 관계가 로그 빈도를 따라 나타나, 효과가 또렷한 구간은 적게 본 쪽이었다. 그래도 옛 살림과 겹친다. 장롱에도 옷자락에도 같은 형상을 얹어 두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에 닿는다. 이 꿈이 서늘하게 남았다면 그 서늘함은 짐승의 성질보다 우리가 어떤 화면으로 이것을 배웠는지에 기댄 것이다.
박쥐 꿈, 간밤 그것은 어떤 모습이었나
움직이던 밤과 붙어 있던 밤은 읽는 결이 다르다.
① 날고 있던 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면 소식이 곁을 지나간 그림으로 읽어 볼 수 있다. 마당이나 처마 밑을 맴돌았다면 그 소식이 아직 집 언저리에 머무는 결이다. 무리가 하늘을 덮었다면 여러 갈래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그림에 가깝다. 한 마리가 멀리 사라졌다면 붙들지 못한 것을 마음이 아직 붙들고 있는 것일 수 있다.
② 어딘가에 붙어 있던 밤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면 남 보기에 불안한 자세가 본인에게는 쉬는 자세일 수 있다. 벽이나 천장에 붙어 있었다면 가까이 있는데 손이 안 닿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어두운 굴에 여럿이 모여 있었다면 혼자 겪는 줄 알았던 일에 같은 처지가 여럿이라는 결이다. 미동이 없었다면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몸이 먼저 읽은 것일 수 있다.
③ 무늬나 물건으로 있던 밤
옷이나 이불에 새겨져 있었다면 복(福)의 결이 가장 곧게 닿는 칸이다. 장롱 쇠붙이에 박혀 있었다면 집안 살림에 얹힌 마음이다. 그릇이나 떡에 찍혀 있었다면 먹고사는 일에 붙은 바람이다. 종이나 그림으로만 있었다면 실물보다 그 뜻을 보고 있었다는 결이다.
전통이 본 것 / 지금 마음이 본 것
전통 — 사전이 적어 둔 것은 해몽이 아니라 무늬였다. 소리가 복(福)과 같다는 이유로 두루 새겼다. 길몽이라 못 박은 문장은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 — 서늘함의 상당 부분은 근래에 익힌 화면에서 온다. 옛 살림은 이 형상을 눈에 자주 띄는 데 얹어 두었다.
박쥐 꿈 해몽, 자주 오는 네 장면
박쥐가 집 안으로 들어온 꿈
안쪽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무언가가 내게로 온다는 뜻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소리 없이 들어와 앉았다면 조용히 오는 소식이고, 부딪히며 요란했다면 오기는 오는데 순서가 엉킨 소식이다. 쫓아내려 애썼다면 받을지 말지 아직 못 정한 마음이다.
박쥐 떼를 본 꿈
수가 많다고 그만큼 무거운 꿈이 되지는 않는다. 여럿이 한 굴에서 지내는 것이 이 짐승의 평소 살림이다. 떼로 나온 장면은 같은 갈래가 여럿이라는 표시로 보면 편하다. 무리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면 요즘 밀려 있는 것을 적어 볼 만하다.
박쥐에게 물리는 꿈
무섭게 남았을 대목이라 감추지 않고 적는다. 물리는 장면은 어느 짐승이든 가까이 붙은 것에 마음이 쓰인다는 신호로 두면 된다. 이 꿈으로 몸에 무슨 일이 생긴다고 잡아 읽을 일은 아니다. 신경 쓰이는 관계가 있다면 그 하나를 정면으로 보라는 뜻으로 새기면 된다.
박쥐 태몽
태몽으로 왔다면 복(福)과 소리가 같아 새기던 형상이라는 점이 그대로 힘이 된다. 새끼를 품었거나 굴 안이 따뜻했다면 더 순한 결이다. 다만 아이의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다고 잡아 둘 일은 아니고, 확인은 병원 몫이다.
낮에 나온 것이었다면 — 이 짐승이 사는 때와 자리
사전의 「박쥐」 항목은 이것을 「포유류 가운데 박쥐목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이라 적는다. 초음파로 먹이의 자리와 크기, 둘레의 형편을 읽어 밤에 움직이고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다. 겨울잠은 「11월에서 이듬해 4~5월까지」이고 그동안 「자연동굴, 폐광, 바위 틈, 건물, 고목의 동공 등」에서 쉰다. 국내에 사는 스물세 종은 모두 벌레를 먹는다.
그래서 꿈에서 이것이 낮에 나와 있었다면 그 칸은 따로 볼 만하다. 밤에 다니는 것이 환한 데 있는 장면이어서다. 이 갈래를 흉하다고 못 박은 옛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겁부터 낼 일은 아니다. 대신 제 때가 아닌 때에 나와 있다고 읽으면 오늘 살펴볼 목록 하나가 생긴다. 시간을 무리해서 당겨 붙인 일이 있는지 한 번 보면 된다. 굴에 매달린 대목이 컸다면 어두운 굴이 나오는 꿈을, 나는 대목이 컸다면 날짐승이 나오는 꿈을 겹쳐 보면 정리가 쉽다.

오늘 하나만 해 두자면 이렇다. 눈에 자주 닿는 데를 하나 골라,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거기 달아 두는 것이다. 달아 두면 지날 때마다 눈이 먼저 그것을 찾게 된다. 옛사람이 장롱에 무늬를 얹은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짐승에게 붙은 옛 이름은 복익, 복을 지닌 날개였다. 간밤에 무엇이 왔든 그 이름 하나는 오늘 가져가도 된다.
박쥐 꿈 해몽에 자주 묻는 것들
꿈에서 무서웠으면 나쁜 꿈인가요?
꿈속에서 느낀 무서움 자체는 풀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이 짐승을 무늬로 익힌 사람과 영화로 익힌 사람의 기분이 갈립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보시면 됩니다.
박쥐 색깔이 기억나면 다르게 보나요?
색을 갈라 적어 둔 기록은 이 글이 가져온 항목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색이 또렷했다면 인상만 참고로 두고, 날고 있었는지 붙어 있었는지 무늬였는지로 가르시면 됩니다.
같은 꿈을 여러 번 꾸면 어떤가요?
되풀이되는 꿈은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아 있다는 표시일 때가 많습니다. 횟수를 세어 뜻을 키울 일은 아닙니다. 늘 같은 대목이 걸리는지만 보시면 충분합니다.